[옆집이 성매매 오피스텔] <상> 오피스텔 주소지를 찾다
서울 판결문 1년치 전수 분석… 43개 동에 오피스텔 378개 호실 분포
역삼ㆍ대치ㆍ서초 등 강남에 집중… 경찰서ㆍ법원ㆍ학원 인근까지 번져
대치동 등 고가 아파트 사는 알선업자 상당수…수익 많지만 환수 어려워
서울 강남구 역삼동 S오피스텔 8XX, 8XX호는 지난해 7,8월, 그리고 8~12월에 각각 성매매 장소로 쓰였다가 적발돼 알선업자들이 처벌을 받은 곳이다. 지난 9일 기자가 찾아간 이 오피스텔은 놀랍게도 역삼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오피스텔 현관을 나서자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보이고, 듣기 좋은 재잘거림이 학교 울타리를 타고 끊임없이 넘어왔다. 학교 정문에서 초등학생이 좋아할 떡볶이 집을 지나 50m쯤 떨어진 W오피스텔. 그 곳 역시 지난해 3~5월 무려 6개 호실이 성매매 장소로 쓰였다. 이 학교 뒤쪽으로 건널목을 건넌 곳에도 역시 성매매 오피스텔이 있었다.
한국일보가 가장 널리 퍼진 성매매 형태인 ‘오피스텔 성매매’의 알선업자(포주) 판결문을 토대로 서울시내 성매매 오피스텔 위치를 추적한 결과, 5개 안팎의 초등학교 바로 앞이나 뒤, 그리고 한두 건물 지나 인접한 건물이 성매매 장소로 확인됐다. 학교뿐 아니라 경찰서ㆍ검찰청ㆍ법원, 유명 대입학원,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마주보거나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도 성매매 장소로 쓰였다. 성매수 남성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조폭 출신이 상당한 포주와 그 고용인들이 관리하는 성매매는 알게 모르게 생활 주변에 끼어들어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ㆍ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 15주년(9월 23일)을 맞아 한국일보는 과거 ‘청량리 588’ 같은 집결지 중심으로 이뤄졌던 성매매가 일반 가정이나 학교의 옆으로 숨어들어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실태를 짚고, 성매매 알선사범에 대한 낮은 형량과 수익 추징의 미비함, 이에 대한 대책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서울중앙지법, 서울동부지법, 서울남부지법, 서울북부지법, 서울서부지법 5곳에서 선고한 오피스텔 성매매 알선업자 판결문은 150건(일부 성매매 당사자 및 범인도피 사건 등 포함).
이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이들이 운영한 성매매 오피스텔은 모두 378개(호실 기준ㆍ건물주소만 있는 곳은 한 개로 계산), 서울 시내 총 43개 동에 분포해 있었다. 최대 10개를 운영한 알선업자도 있었다. 역삼동이 73개로 가장 많았고 대치동 50개, 서초동 32개였다. 아울러 논현동 12개, 삼성동 10개 등 강남구에 몰려 있었다. 성매수 주요 고객인 직장인들이 많고 유흥 문화가 발달한 곳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강남역과 선릉역 주변이 가장 많아, L오피스텔(대치동)과 D오피스텔(역삼동) 등은 성매매 호실이 집중돼 있었다. 또 공덕ㆍ신공덕동이 합쳐 20개, 도화동 15개 등 마포구도 성매매 오피스텔이 많은 지역이었다. 마곡동(강서구)이 18개, 길동(강동구)ㆍ창동(도봉구) 각 11개, 신림동(관악구)ㆍ독산동(금천구) 각 10개로 나타났다.
역삼초는 정문, 당서초(영등포구)와 두산초(금천구)는 후문을 나서면 바로 성매매 오피스텔이 있었고, 염리초(마포구) 대신초(서대문구) 등은 한두 개 건물을 지나 성매매 오피스텔이 위치했다. 서울에서 붙잡힌 알선업자들은 일부 경기도와 천안 등에도 성매매 오피스텔을 운영했고, 인천 부평동 초등학교 바로 인접한 오피스텔 건물에서도 성매매가 적발된 것으로 나온다. 적발 시점은 대부분 2018년이나 그 전이기 때문에 지금도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교 바로 옆도 아랑곳 하지 않는 성매매 오피스텔의 대담한 분포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선릉역 인근 진선여중고를 비롯해 강남의 학교들은 가까운 곳에 성매매 오피스텔 지대가 넓게 형성돼 있었다. 강남대성학원 옆 O오피스텔도 성매매가 적발된 곳이다. 또 서초동의 한 아파트촌과 어린이집 입구 앞에도 성매매 오피스텔이 있었다.
대담하게도 서울 마포경찰서, 서울서부지검ㆍ서울서부지법 바로 옆과 앞의 H오피스텔, 그 검찰ㆍ법원 옆 P오피스텔에서도 성매매가 이루어졌다. H오피스텔은 비교적 활기차고 깨끗한 분위기이며,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성매매 오피스텔들의 경우 다소 어둡고 칙칙한 곳도 있지만 이처럼 밝고 실생활과 밀접한 분위기의 오피스텔에서까지 조직적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아예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성매매 오피스텔들도 눈에 띄었다. 공덕역과 마포역, 마곡나루역, 쌍문역, 합정역의 출구에 성매매 오피스텔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피스텔 성매매는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렵지만, 적발돼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역삼초 앞 S오피스텔의 경비원은 “오래 일했지만 성매매는 전혀 알지 못하고 적발된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간혹 소음 등으로 신고가 들어왔다고 경찰이 찾아오는데 어느 호실인지는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상경한 대학생, 가족단위 주민들도 살고 있지만 입주민이 무슨 일을 하는 지는 알기 어렵다. 역삼초 인근 또 다른 성매매 장소였던 W오피스텔은 층마다 보안카드를 찍어야 출입할 수 있어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는 구조였다. 서울서부지검 앞 오피스텔 경비원은 “성매매가 적발됐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가족이나 직장인들이 주로 산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알아채기 힘들다고 해도, 오피스텔 성매매는 업소 못지 않게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올 2월 성매매알선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 등의 공소장을 보면, 업주(포주)인 이씨는 오피스텔 임차자금 조달과 수익금 관리를 담당하고, 공동업주 김모씨는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고 성매수남을 유치하는 업무를 했다. 이들에게 고용된 정모씨는 성매수남을 안내하고 업소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으며, 남모씨는 오피스텔 청소와 잔심부름을 했다.
오피스텔 성매매는 호실을 여러 개 운영할 경우 업주는 한 해 수억원을 벌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현금만 받기 때문에 수사당국의 재산 추적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판결문의 알선업자(업주와 피고용인) 거주지를 분석한 결과 약 230명 중에서 40명 정도가 강남 3구(강남ㆍ서초ㆍ송파)에 거주하고 있었다. 직업이 회사원으로 적시된 알선업자 K씨의 거주지는 대표적인 부촌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였다. 강남 지역은 아니라도 매매가가 10억이나 20억 안팎에 이르는 서울지역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례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들 아파트의 주인은 대부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다. 성매매 수익금이 흘러 들어갔더라도 환수가 될 수 없는 구조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단속을 피해서 오만 군데에 이런 형태의 업소들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이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법개정이 필요한지를 비롯해서 성매매 업주(알선사범)의 낮은 형량 문제, 수익금 환수문제 등 풀어야 할 여러 쟁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한채영ㆍ이정원 인턴기자
▶서울 성매매 오피스텔 분포 지도 보기= 1년간 판결문을 통해 확인한 성매매 오피스텔들이다. 정확한 주소지를 공개할 경우 선의의 피해가 있을 수 있어서, 주요 이정표를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성매매 오피스텔 개수를 모아서 수치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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