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살인사건 풀어내기까지]
경찰 보관하던 속옷 등 증거물, 발전된 기술로 DNA 추출해 내
‘23만명 DB’서 지난달부터 대조… 이춘재, 5ㆍ7ㆍ9차 사건과 일치
경찰은 33년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유전자(DNA) 감식기법을 수사에 도입했다. 그 이전에는 DNA를 분석할 기술도 인력도 없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7)가 33년 전 범죄 현장에 남긴 DNA 정보는 수사기법의 진보로 이어졌고 진일보한 DNA 감식기법은 장기 미제사건을 푼 열쇠가 됐다.
경찰은 86년 9월부터 91년 4월까지 벌어진 10건의 살인사건 가운데 5차·7차·9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를 전국 범죄자의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이씨의 것과 일치한 사실을 확인했다. 반기수 경기남부경찰청 2부장은 19일 브리핑에서 “그간 보관하고 있던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 감식을 의뢰해 최근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대조 작업을 벌인 결과 이씨 DNA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씨가 유력 용의자로 특정된 건 약 한달 전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검 DNA화학분석과는 지난달 9일 국과수로부터 DNA가 일치하는 수형자가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긴급 요청을 받았고 바로 당일 검찰 데이터베이스에서 동일한 DNA형을 확인해 경찰에 통보했다. 이처럼 신속하게 신원 확인이 가능했던 건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DB)’ 덕분이다.
정부는 흉악범의 조기 검거를 위해 지난 2010년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범죄자 DNA 정보를 한 데 모아 관리하는 DB 시스템을 본격 가동했다. DB엔 수형자, 구속피의자, 각종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정보가 저장돼 있다. 미결ㆍ기결수가 구치소와 교도소에 수감되면 즉시 DNA 검사를 받아 그 결과는 DB시스템에 저장된다. 국과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범죄자 DNA DB’에 저장된 정보는 23만3,000여명 분. 검찰과 경찰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 발견된 21만건의 DNA 정보를 기존 DB에서 확인해 8,130건이 일치하는 결과를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1994년 부산교도소에 수감된 이씨의 DNA도 정부가 데이터베이스를 가동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에나 추출할 수 있었다. 이씨의 DNA는 2011년 10월 채취됐고 이듬해 1월 DB에 등록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이씨를 용의자로 지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물의 DNA였다. 사건 당시 경찰이 일본에서 DNA 분석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뒤에도 당시 수집한 증거물들을 경기지방청에 보관해오던 경찰은 최근 다시 DNA추출 작업을 시도했다. 지난해 DNA 재분석을 통해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지적 장애인 성폭행 사건을 17년 만에 해결한 사례가 나오면서 경찰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증거물들을 국과수에 보냈다고 한다.
경찰이 보낸 증거물은 당시 이씨가 피해자의 목을 조를 때 썼던 속옷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닥 기대를 걸고 보낸 증거물에서 놀랍게도 DNA를 추출할 수 있었고 국과수가 보낸 결과물은 검찰 DNA DB 상에서 이씨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엔 증거물 보존 상태만 양호하면 채취된 DNA가 소량이어도 분석이 가능하다. DNA 시약 민감도가 향상되고 분석기법이 발전하면서 10여년 전 증거물에서 DNA를 채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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