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근 당시 청주서부署 형사
“가족까지 해서 주변 사람들 전부 조사했는데 딱 한 사람, 이춘재만 무덤덤하더라고요.”
20일 전화로 연결된 김시근(62)씨는 1994년 이춘재를 처제 살해 혐의로 체포했을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김씨는 사건 당시 청주서부경찰서(지금은 청주흥덕경찰서) 강력5반 형사였다.
알려진 대로 1994년 1월 이춘재는 ‘토스트기를 주겠다’며 처제인 이모(당시 20세)씨를 청주 복대동 집으로 불러들였다. 수면제를 탄 주스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800m 떨어진 철물점에다 버렸다. 김씨는 "시신을 비닐봉지와 스타킹 등으로 묶은 뒤 커다란 베개 껍데기 안에다 넣어뒀다”며 “어찌나 꼼꼼하게 쌌던지 피 한 방울조차 안 떨어지게 해뒀더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는 사건 현장만 보고도 곧바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떠올렸다. 화성에 있던 이춘재 집을 압수수색 하면서 이런 내용을 화성 쪽 경찰에다 알렸다. 하지만 수사 공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추가 수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수사 중 이춘재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건 김씨의 직감이었다. 그는 “가족 등 주변 인물 22명을 조사하는데 이춘재만이 유일하게 덤덤한 표정을 보였다”며 “48시간 넘는 조사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건이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가자 이춘재는 혐의를 부인했다. ‘강압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 주장했다.
흥미로운 건 당시 이춘재 사건을 맡은 사람이 이종기 변호사라는 점이다. 이 변호사는 대전지검 부장검사 출신으로 1990년대말 대전법조비리사건의 주범으로 처벌받은 인물이다. 이 변호사는 “이춘재와 부인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처제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 “직접증거는 없고 경찰의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시 이춘재 집에서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서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했다고 들었다”며 “변호사가 말이 안 되는 주장을 많이 해 그때 참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이춘재가 화성에서 청주로 옮겨간 시기를 지금까지 알려진 1993년이 아니라 1990~91년 무렵으로 추정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춘재는 건설현장 포크레인 기사였다. 일 때문에 청주를 오가다 건설회사 경리였던 부인을 만났고, 1994년 1월 사건 당시 만 두 살배기 아이가 있었으니 1990~91년쯤에 청주로 생활근거지를 옮겼으리라는 얘기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추적 중인 경찰은 1991년 4월 발생한 10차 사건은 이춘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주=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청주=김진웅 기자 wo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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