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와 가격으로만 집을 평가하는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거문화를 모색하는 릴레이 전시 ‘최소의 집’의 아홉 번째 전시가 열린다. 이 전시는 2013년 10월부터 시작해 매년 두 차례씩 개최됐다. 회마다 3명(팀)의 건축가가 참여한다. 전시를 기획한 정영한 건축가(정영한아키텍츠)는 “집의 가치를 크기와 비용에만 한정해 생각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라며 “최소의 집은 작거나 싼 집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맞는 적정공간을 말한다”고 말했다.
23일부터 서울 서교동 온수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이기철 건축가(아키텍케이)는 인간이 사는 공간을 만들어 온 건축이 자연을 차지한 데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한국의 전통건축과 서양건축을 실험적으로 접목해 온 젊은 건축가다. 그가 선보이는 ‘사라질 집’은 대나무 밭을 배경으로 한다. 집이 놓이는 곳까지 대나무를 잘라 길을 만든다. 집터엔 기둥이 될 만한 대나무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른다. 자른 대나무는 매듭을 이용해 바닥과 지붕으로 만든다. 인공적인 재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 그렇게 한시적으로 쓰인 최소의 집은 목적이 사라지면 그대로 썩어서 사라진다. 이기철 건축가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이 자연을 점유하는 건 한시적 행위다”라며 “최소의 집은 사라질 집이다”라고 정의했다.
김진휴ㆍ남호진 건축가(김남건축)에게 최소의 집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보물상자’로 정의된다. 주택을 설계하면서 집에 대한 고민을 해온 팀은 와인셀러와 사우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건축주, 부엌은 없어도 거실은 영화관이길 바라는 건축주, 자전거를 위한 방이 필요한 건축주 등 개인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꼭 담고 있는 집이 최소의 집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당신의 최소의 집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본질에 다가서는 시도도 있다. 강소진ㆍ김소라 건축가(다이아거날써츠)는 14개국 21개 도시의 건축 관련 종사자 혹은 공간에 관심을 가진 29명과 최소의 집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해 선보인다. 강소진 건축가는 “건축가가 정해진 형태를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최소의 집’에 대해 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다”라며 “인터뷰를 해보니 공유공간, 이동공간, 사멸공간 등 최소의 집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달랐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관객이 생각하는 최소의 집을 모형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최소의 집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지만, 전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뚜렷하다. 기존 크기와 비용에 근거해 집을 소유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자신에게 알맞은 집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영한 건축가는 “매회 주거와 관련한 특별한 얘기를 펼치기보다 ‘최소의 집’이라는 공통 주제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고자 했다”라며 “1인가구 증가, 집 짓기 열풍 등 빠르게 변화하는 주거문화 속에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맞는 적정공간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삶에 맞게 변화할 집의 유형은 무엇인지 건축과 대중이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4일에는 김재관 건축가(무회건축연구소)와 김인성 영남대 가족주거학 교수 등이 참여하는 포럼도 열린다. 전시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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