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ㆍ수사팀, 이중 성향에 경악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가 1994년 처제 살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중부매일 제공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인 이춘재(56)는 살인범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모습으로 일관해 수사팀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이씨 사건 판결문과 당시 수사진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 1월 자신의 집에서 처제(20)를 성폭행한 뒤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살해했다. 시신의 머리에서는 함몰된 부위 3곳이 발견됐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분명히 4번 내리쳤다”고 진술했다. 결국 부검을 해보니 1번은 비껴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기억이 정확했던 것이다. 당시 이씨를 심문한 김시근(62)씨는 “수사팀이 눈으로 확인한 건 세 방이었는데, 이씨는 끝까지 네 방이라고 우겼어. 근데 정말 네 번 때린 걸로 나왔다”고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부검 결과를 받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과정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할 수 기억할 수 있을까’란 의문과 함께 ‘참 무서운 놈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수시로 진술을 바꿔 수사팀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범행을 자백했다가도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고 판단하면 다시 범행을 부인하는 식이었다. 이씨는 48시간 넘는 조사 끝에 처제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사건이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가자 ‘강압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수사팀은 말을 바꾸는 이씨의 범행을 입증할 단서를 찾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감식 담당자로 수사에 참여한 이모(60)씨는 “다시 정밀 현장조사를 벌인 끝에 이씨 집 세탁기 받침대에서 피해자 혈흔을 채취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이씨가 흉기를 휘두른 횟수를 굳이 강조한 것은 최종적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사실을 감추고, 우발적인 범행으로 위장하려 한 것 아닌가 추측된다”며 “참으로 용의주도한 인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통했다고 한다. 부인과 세 살 난 아들에게는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조용하고 유순한 사람으로 행세하는 극단적인 이중 성향을 보였다. 이씨와 선후배로 사이로 지낸 이모(58)씨는 “워낙 착했던 사람이라 처제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이춘재가 처제를 살해한 청주에는 현재 처제 가족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후 대부분 청주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청주토박이로 이씨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는 그의 손위 동서(58)도 수년 전 외국으로 이주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를 기억하는 주민도 거의 없다. 사건이 발생한 마을에서 계속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형부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죽였다는 소문이 돌아 며칠 동안 밤에 못나갔던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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