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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360˚] 장기미제 수사팀 활약 덕에…‘완전범죄는 없다’

입력
2019.09.24 09:44
수정
2019.09.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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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사건 외 나주 드들강·용인교수 부인 살인사건 등 해결 

 2011년 전담팀 구성 후 52건 해결…수사 중인 미제사건 268건 

1993년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당시 경기 화성군 정남면 농수로에서 유류품을 찾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93년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당시 경기 화성군 정남면 농수로에서 유류품을 찾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경찰 장기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집념과 끈기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33년 전 발생한 사건이라 추가 증거 확보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경찰이 장기간 보관해온 증거물의 유전자(DNA) 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등 사건을 끝까지 추적했기 때문이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았던 화성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길이 열리면서 앞서 미제사건 전담팀이 해결한 또 다른 살인사건들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태완이법’ 시행을 계기로 경찰이 재수사에 돌입해 진실 규명의 빛을 본 사건들은 어떤 게 있을까.

 ◇‘완전 범죄 없다’ 경종 울린 살인사건들 

‘나주 드들강 살인사건’은 태완이법 시행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된 뒤 유죄가 선고된 첫 사례다. 이 사건은 2001년 2월 전남 나주시 드들강변에서 여고생 A(당시 17세)양이 성폭행 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되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A양 몸에서 DNA가 검출됐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다.

처음엔 검찰이 범인을 잡을 뻔 했다. 2012년 8월 대검찰청은 A양 체내에서 검출된 DNA와 다른 강도살인 사건으로 목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무기수 김모(42)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검찰은 김씨로부터 A양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진술은 확보했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해 2014년 10월 김씨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후 태완이법이 시행돼 2016년 2월 수사가 재개됐다. 경찰은 검찰과의 합동 재수사를 통해 A양 주검에서 채취한 혈흔을 분석했고, A양의 생리혈을 확인했다. 또 김씨가 수감 중인 교도소 재소자 350여명을 전수조사해 김씨가 동료 재소자에게 범행을 고백한 사실도 확인했다. 김씨는 2016년 8월 기소돼 다음해 1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2001년 6월 경기 용인시 단독주택에 침입해 잠을 자던 여성을 살해한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도 하마터면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다. 2001년 6월 대학교수이던 B(당시 55세)씨 부부가 사는 용인의 단독주택에 누군가 침입해 B씨 부인(당시 54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B씨에게 중상을 입힌 뒤 달아났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 동일 수법 전과자 등 5,000여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 수사했으나 범인을 특정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건은 2007년 2월 미제로 분류됐다.

그러나 2016년 7월 재수사가 진행됐다. 경찰은 당시 수사 대상자의 알리바이를 살펴보던 중 김모(당시 54세)씨와 공범인 C(당시 52세)씨가 사건 발생 시간대에 현장 주변에서 통화한 기록을 발견했고, 유사 범죄를 저지른 전력도 확인했다.

두 사람은 애초 범행을 부인했으나, 수사에 압박을 느낀 C씨가 가족에게 범행을 실토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김씨는 범행 16년 만인 2017년 11월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2002년 노래방 여주인의 시신이 발견된 충남 아산시 갱티고개 전경. 충남경찰청 제공
2002년 노래방 여주인의 시신이 발견된 충남 아산시 갱티고개 전경. 충남경찰청 제공
2002년 4월 당시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 범인이 피해자 명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연합뉴스
2002년 4월 당시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 범인이 피해자 명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연합뉴스

 ◇‘프로파일링 보고서’로 사건 실마리 풀기도 

경찰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이 돋보인 사건도 있었다. 2002년 4월 충남 아산시에서 차를 타고 귀가하던 노래방 여주인이 납치 후 살해된 채 아산 갱티고개에서 발견된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초기 수사 당시 경찰은 범인이 현금인출기 8곳에서 피해자 카드로 195만원을 인출한 사실을 주목하고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러나 범인이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려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고, 유력한 목격자 진술도 틀린 것으로 확인돼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15년이 흐른 2017년 1월 5개 지방청 소속 프로파일러 8명으로 합동 미제사건 수사팀이 꾸려졌다. 수사팀은 수사기록 4,300쪽을 해체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구성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라 운전과 동시에 피해자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 2명 이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범의 존재를 예상한 경찰은 사건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D(52)씨에 주목했다. D씨는 유사 전과가 있지만, 차에서 발견된 DNA가 달라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던 인물이었다. 경찰의 집중 추궁 끝에 D씨는 결국 직장 선후배 사이였던 E(42)씨와 공동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프로파일링 보고서는 판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판부가 검찰이 제출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재판 증거로 채택하면서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2017년 11월 계획적인 강도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외에도 2002년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 여주인을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2012년 울산에서 이웃에 사는 노인 2명을 야구배트로 때려 살해한 ‘울산 70대 노인 살인사건’ 등이 전담수사팀에서 해결한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거론된다.

1991년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당시 아이들을 찾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당시 아이들을 찾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 남은 미제사건 268건… ‘개구리소년’도 풀어야 

2011년 각 지방청에 17개 미제사건 전담팀이 꾸려진 이후 해결된 강력사건은 모두 52건. 79명이 검거됐다. ‘완전범죄는 없다’는 말을 증명한 경찰의 쾌거로 평가되지만, 아직 풀어야 할 미제 사건도 산적해 있다. 현재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수사 중인 미제 살인사건은 총 268건에 달한다. 지방청 별로 서울 59건, 경기 남부 37건, 부산 26건, 경북 16건, 경기 북부ㆍ울산ㆍ충북 14건 등이다.

태완이법 시행 이전에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들은 범인을 잡아도 처벌이 어려워 더욱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태완이법은 2015년 기준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살인죄에만 해당해 2000년 8월 이전 살인사건은 적용되지 않는다. 1991년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해사건’ 등 국내 3대 장기미제로 꼽히는 사건들도 진범을 처벌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사건의 진실이라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도 태완이법 적용 대상 사건뿐 아니라 공소시효가 끝난 장기미제 사건에 대해서도 전면 재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형호군 유괴 사건은 서울경찰청에서, 개구리소년 사건은 대구경찰청에서 원점부터 재수사하기로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0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개구리소년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아 “화성 사건에서 보듯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해 개구리 사건의 남겨진 유류품 등 증거들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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