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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바라는 공정함이란,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사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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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바라는 공정함이란,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사회죠”

입력
2019.09.24 04:40
수정
2019.09.24 09:3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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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지 않다’의 저자 박원익 조윤호씨 “사소한 차이에 민감한 세대”

‘공정하지 않다’의 공동저자인 박원익(왼쪽)ㆍ조윤호씨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1990년대생의 정서를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공정하지 않다’의 공동저자인 박원익(왼쪽)ㆍ조윤호씨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1990년대생의 정서를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헌법을 유린한 국정농단보다 더 분노한 건 “돈도 실력”이라던 정유라의 한마디였다. 민족 화해의 물꼬를 트겠다는 남북단일팀 구상이 나오자 ‘선수들이 흘려온 땀의 가치는 어떻게 보상해줄 거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드러난 기득권 대물림의 민낯에 또 한번 촛불을 들었다.

1990년대생에게 ‘공정’은 나와 직결된 문제이고, 시대적 과제다. 독재 군부 정권에 저항했던 86세대에게 ‘민주화’가 있었다면 90년대생에게 정의의 척도는 ‘공정함’이다. 이들은 왜 이토록 공정을 강조하는 걸까. 90년대생의 정서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삶의 해법을 제시하려는 책 ‘공정하지 않다’(지와인)의 두 저자 박원익ㆍ조윤호씨를 만나 들어봤다. 1980년대 후반(각각 87년생, 89년생)에 태어난 두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온라인 공론장에서 청년 세대 이슈를 주도해왔다. 현재는 지자체 정책연구기관과 여론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90년대생이 다른 세대보다 공정의 가치에 더 민감한 것 같다.

조윤호(조) = “지금의 20대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세대 내 평등화가 고르게 형성된 집단이다. 과거엔 대학생이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는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잘 다루고 기술 습득 능력도 크게 차이가 없다. 이들의 삶은 모든 것이 객관적 점수로 환산돼 왔다. 초중고 12년 관리한 내신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비정규직, 인턴, 서포터즈의 단계를 역으로 거쳐야만 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입시와 취업의 문은 좁았다. 믿을 건 나 자신의 노력뿐이었다. 그런데 부모의 배경, 인맥, 지연 등 미세한 불공정이 개입해 사소한 차이로 결과가 뒤집혔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나. 이들이 공정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학습한 생존 반응으로 볼 수 있다.”

-90년대생이 지향하는 공정의 기준과 특징이 있다면.

조= “2년 전 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농단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비정상적 통치행위’가 문제였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20대는 ‘정경비리 유착’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90년대생은 분배의 공정성, 반칙과 기득권으로 얻는 무임승차와 특혜에 대해 다른 어떤 세대보다 문제의식이 뚜렷하다. 90년생이 바라는 공정함은 대단한 게 아니다. 내가 노력하면 미래가 바뀔 수 있는 사회, 내 삶이 결정돼 있지 않은 사회를 말하는 거다.”

박원익(박)= “다른 세대 보다 공정함의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90년대생은 진보냐, 보수냐의 틀에 갇혀 공정의 가치를 달리 두지 않는다. 조국 장관 임명 과정에서 20대가 어느 세대보다 부정적 여론으로 빠르게 돌아섰던 건, 자신들이 지지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90년생들은 내 편이라고 느낄수록 높은 도덕적 논리성, 일관성을 요구한다. 그래야 상대 진영을 이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20대를 두고 보수화됐다고 진단하는데.

조= “더 강력한 공정함을 요구하고 있기에 오히려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월 비트코인 거래소 폐쇄 방침이 나오자, 90년대생 사이에서 ‘코인 판에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면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재조명해 연관검색어로 만들었다. 땅 투기로 돈을 벌어놓은 장관이 비트코인은 도박 취급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비정상적 시세차익을 노리는 비트코인 거래는 강력히 규제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더 큰 금액이 오가고, 노력 없이 주어지는 세습 자본주의의 결정판인 부동산 투기는 왜 똑같이 규제하지 않냐고 물은 것이다.”

-386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86세대의 가장 큰 잘못은 20대의 사다리를 걷어찬 게 아니다. 같은 50대의 동년배가 정리해고 당할 때,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릴 때 막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지 못해 그 피해가 20대로 넘어 온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50대 가난한 가장들이다. 이들이 흔들리면 부양 능력이 떨어져 20대 자식도 비정규직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어느 세대가 양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세대 갈등과 대립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가는 건 경계한다.”

-정치권에 90년대생의 목소리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

박= “90년대생이 바라는 건 공정함을 지키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관된 해법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앤드류 양이 트럼프 지지층에게도 환호를 받고 있는 건, 그가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등 사회 개혁 조치를 꾸준히 말해온 덕분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청년 비례대표 한 명 할당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90년대생이 맨 앞에서 세습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보편적인 개혁의 주체가 되고, 기성세대는 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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