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석 교수가 쓴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철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에 영어로 쓴 이 책의 원제목은 ‘inventing temperature’이다. 과학자들은 과학 개념이 ‘발명된다’ ‘만들어진다’ 또는 ‘구성된다’는 식의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주관적이고 작위적인 뭔가가 개입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장하석 교수는 과학과 과학철학 사이의 상보적인 관계를 설파했지만 책 제목은 역시나 과학철학자다운 선택이었다. 과학자들은 ‘발명’보다는 ‘발견’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발견의 대상이 객관적인 실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견이란 마치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을 고고학자가 발굴해 내는 것과도 같다. 과학자들은 DNA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과 상대성이론도 ‘발견’했다.
자연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과학자라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검사이다. 아마 검사들도 사건의 진실을 만들어 냈다거나 ‘invent’했다는 말보다 발견하고 밝혀냈다는 말을 더 좋아할 것이다. 과학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잘못이 데이터 조작이라면 검사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잘못은 사건 조작이다. 검사라는 직업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시절 숱하게 조작했던 공안사건 때문인지 검찰하면 ‘invent’의 추억이 쉬 사라지지 않는다. 곳곳에서 검찰 개혁을 외치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그 중의 백미는 2007년 대선이 아닐까 싶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와 횡령 등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논란이 됐던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임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자금의 흐름 등을 따져봤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주가조작 사건과 무관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2007년 당시 검찰은 수많은 증거를 무시하고 주가조작 사건의 매우 유력한 용의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셈이다. 관련 검사들은 줄줄이 출세가도를 내달렸다. 총성 없는 쿠데타로 기록될 전대미문의 이 사건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당사자들에게 어떤 책임을 물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던 검찰이 그새 훨씬 더 정의로워졌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과 유독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해서만 집단적으로 안면인식장애를 일으켰던 기괴한 증세를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금 검찰의 조국 수사는 범죄 사실의 ‘발견’에 가까운가, 아니면 ‘invention’에 가까운가? 검찰의 속마음을 알 길은 없으나 마침 불거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녀들 관련 의혹은 조국 장관의 딸 의혹에 대한 좋은 대조군 역할을 하고 있다. 비슷한 의혹에 비슷한 물량의 수사력이 투입되었는지, 비슷한 강도의 수사가 진행되었는지가 일차적인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존재 자체로 공정해야 할 공권력으로서의 검찰의 공정함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두 사건을 다루는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공정성을 말하던 조국이 공정함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언론의 공정함은 또 어떤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최대 강도의 수사에도 아직까지는 조국 직계가족의 범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조국 장관에게 범죄 사실이 있든 없든 그와는 별개로 검찰과 언론의 광기 어린 ‘조국 사냥’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되었다. 암이 의심된다며 환자를 눕혀 놓고 사체 부검 수준으로 수백 군데를 난도질하다가 결국 조그만 용종 한두 개를 꺼내들고 말기 암환자라고 진단한다면 그건 의사가 아니고 살인자이다.
꼭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우리는 단순한 자살사건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검사와의 대화, 탄핵, 관습헌법, 아방궁, 논두렁 시계로 이어지는 맥락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군가에겐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어야만 했고, 누군가는 그 결론에 짜 맞추기 위해 아방궁과 논두렁 시계를 ‘고안(invent)’했다. 이 부당한 괴롭힘의 역사를 잘 아는 노회찬 의원에게는 4,000만원의 무게가 남달랐을 것이다. 나는 작년 노회찬 의원의 허망한 서거 소식을 듣고 ‘노무현 괴롭힘’의 본보기 효과가 10년이 다 되도록 지속되는구나 싶어 섬뜩했다. 두 정치인의 자살 뒤엔 그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생물학적인 위해는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인격살인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이것은 ‘연쇄살인’이다. 조국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살인의 추억이다.
우리는 그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33년 만에 밝혀진 것에 비하면 다행이다. 불행히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만 있을 뿐, 붙잡아가지도 처벌하지도 못하고 있다. 누구나 다 범인을 알고 있는데도 영구미제사건이다. 나는 이 희대의 연쇄살인범을 역사의 법정에 꼭 세우고 싶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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