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의 최대 골칫거리인 난민 문제를 풀 실마리가 생겼다. 지중해를 거쳐 들어오는 난민들을 도착지에 상관없이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분산 수용한다는 게 골자다. 분배 비율을 정하고, EU 전체 회원국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등 난관은 남아 있지만 수년간 난민 이슈를 놓고 불거진 유럽의 정치적 반목을 끝낼 단초를 마련했다는 기대가 적지 않다.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몰타 4개국 내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몰타에서 만나 이탈리아 및 몰타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EU 국가에 의무 배분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른바 ‘쿼터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난민들을 태우고 온 선박의 기착지가 어디냐에 관계없이 할당 비율에 따라 이들을 분산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난민들을 행선지로 보내는 시한도 4주로 정해졌다. 루치아나 라모르게세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새 계획에 근거해 보트로 유입되는 난민의 99%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험이지만 튼튼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유럽으로 건너오는 난민은 연간 최대 100만명에 달한다. 특히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가까워 해상 난민이 대거 몰리는 이탈리아와 몰타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17일에는 이탈리아 해안경비대가 몰타 해역에서 구조한 난민 90여명의 처리 문제를 놓고 두 나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때문에 2015년에도 난민 의무할당 방안 도입을 두고 EU 지도자들이 투표를 실시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끝내 채택이 무산됐다.
지지부진하던 난민 논의는 지난달 이탈리아 정권이 바뀌면서 반전을 맞았다. 지난 연립정부의 일원이던 극우정당 동맹은 난민구조선의 입항을 원천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00만유로의 벌금을 물릴 만큼 엄격한 반(反)난민법을 시행했다. 반면 새로 출범한 좌파 연정은 이민자 수용에 더욱 유연한 입장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난민 이슈가 더 이상 유럽에 반대하는 선전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난민 할당 제도 시행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내달 8일 열리는 EU 28개 회원국 내무장관 회의에서 이날 합의문에 명시하지 않은 난민 분배 비율 등에 관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다. 로이터통신은 “헝가리ㆍ폴란드처럼 아예 난민을 거부하는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EU 차원의 재정지원이 없는 한 새 계획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합의문이 난민 유입 경로를 리비아를 출발해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단일 코스로 설정한 점도 논란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작년 통계만 봐도 다른 해상 루트, 예컨대 모로코-스페인 코스나 터키를 경유해 그리스로 가는 난민 수가 월등히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 할당 구상에는 앞으로 발생할 신규 난민만 포함돼 있어 보다 중요한 과제인 EU 내 기존 불법 난민 문제를 해소할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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