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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서 “아무리 힘들어도 연기라는 꿈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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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서 “아무리 힘들어도 연기라는 꿈을 믿었다”

입력
2019.09.25 15:22
수정
2019.09.25 18:3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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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의 성장통 다룬 영화 ‘아워 바디’ 26일 개봉

최희서는 달리기로 변해 가는 몸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 한 달 반 전부터 훈련으로 몸을 만들었다. 그는 “토할 때까지 운동하면서 몸을 바꾼 경험이 마음까지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웅빈이엔에스 제공
최희서는 달리기로 변해 가는 몸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 한 달 반 전부터 훈련으로 몸을 만들었다. 그는 “토할 때까지 운동하면서 몸을 바꾼 경험이 마음까지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웅빈이엔에스 제공

배우는 필모그래피로 말한다. 조금 늦게 채워지기 시작한 목록이지만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다. 열혈 페미니스트이자 천황제를 부정한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영화 ‘박열’ㆍ2017)와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여성 쿠미(‘동주’ㆍ2015), 씩씩한 조선족 싱글맘 임청아(tvN 드라마 ‘빅 포레스트’ㆍ2018)까지. 누구보다 뜨겁고 강인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한 여성들이 배우 최희서(33)의 숨결로 빚어졌다.

이 필모그래피는 새 영화 ‘아워 바디’(26일 개봉)로 인해 한층 비범해졌다. 최희서는 8년째 행정고시에 낙방한 서른한 살 여성 자영을 연기한다. 지칠 대로 지쳐서 시험마저 포기한 자영은 피폐해진 마음으로 터벅터벅 걷다가 동네를 달리고 있는 현주(안지혜)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현주에게서 자극받아 함께 달리기를 하면서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20일 서울 압구정동 카페에서 마주한 최희서는 “평범한 여성의 독특한 성장 드라마라서 끌렸다”고 말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여성을 그리고 싶은 갈증을 항상 품어 왔어요.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역할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저도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터라 자영에게 충분히 공감했어요. 2009년 ‘킹콩을 들다’로 데뷔해 2017년 ‘박열’로 알려지기까지 저에게도 8년 무명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2015년 ‘동주’를 만나기 전에는 오디션 떨어지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면 어떻게 하나 고민도 많이 했죠.”

그래서 최희서는 “‘아워 바디’는 여성이 주축이 됐지만 이 시대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새로 시작하기에 서른 살이 늦은 나이인가 묻고 싶다”고도 했다. “‘박열’ 개봉 직후 ‘아워 바디’를 찍었는데 그때 자영과 똑같은 서른한 살이었어요. 한가람 감독은 서른두 살, 촬영감독은 서른한 살이고요. 30대 초반 또래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을 나누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기뻤어요.”

서른한 살 여성 자영은 변해 가는 몸을 관찰하면서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서른한 살 여성 자영은 변해 가는 몸을 관찰하면서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최희서도 꿈을 위해 20대를 바쳤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섰고, 창작집단을 꾸려 단편영화 작업을 했다. 연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최희서는 “내 꿈을 완전하게 믿었다”며 “아무리 실패해도 내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 했다”고 말했다. 자영에게 달리기가 있었듯, 최희서에겐 연기가 존재 이유였다.

“달리기를 할 때 극한의 고통을 넘어서면 쾌감이 찾아와요.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죠. 연기가 꼭 그래요. 너무나 어려워서 몸부림치다가도 바늘구멍에 실이 꿰어진 것 같은 순간을 만나면 저도 생각하지 못한 감정과 눈빛이 나와요. 그런 날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흥분돼요. 그런데 신기한 건 러너스 하이를 인식하는 순간, 오히려 러너스 하이로부터 멀어진다는 거예요. 어떠한 계획이나 욕심 없이,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좋은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박열’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에서 신인상 11개를 휩쓸며 충무로 기대주로 성장했지만, 최희서는 지금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출연하기로 한 새 작품이 미뤄지거나 무산되는 일을 몇 차례 겪고 나서 미국 할리우드 영화 오디션에 도전해 주연을 따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든 유명 제작자 게리 포스터가 제작하는 저예산 영화다. 최희서는 “나는 쉬운 길은 가지 않을 운명인가 보다”며 생긋 웃었다.

최희서 앞엔 또 다른 운명도 기다리고 있다. ‘아워 바디’ 개봉 이틀 뒤인 28일, 연세대 재학 시절 만나 6년간 사랑을 키운 연인과 결혼한다. “예전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드라마를 찍으러 논산까지 기차 타고 내려갔다가 일정이 지연돼 촬영을 못하고 올라온 적이 있어요. 다음주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죠. 그때 저와 함께 동행했고 눈물을 닦아 준 친구예요. 개봉과 결혼을 동시에 준비하느라 바빠서 아직은 실감나지 않아요. 결혼행진곡이 울릴 때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네요(웃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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