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로 얼룩진 경찰 과거 화성사건 수사
지금 검찰 ‘조국 수사’ 정쟁 미끼로 전락
과연 공익 위한 법집행인지 자성해 보길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ADLOMICO)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살인의 추억’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성큼 발돋움한 계기이자 2003년 흥행에 죽 쑤던 제작사 싸이더스에 구원 같은 영화였다. 송강호는 이 작품으로 ‘티켓 파워 1위 배우’로 입지를 굳혔고 박해일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이들만큼은 아니어도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뇌리에 남은 배우는 여럿이다. 동네에서 바보 취급받는 고깃집 아들 백광호를 연기한 박노식도 그 중 하나다.

피해자 향숙을 졸졸 따라다녔다는 이유로 살인사건의 첫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받으면서 백광호는 진범인 것처럼 범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진술 외에 다른 물증이 없는데다 어릴 적 화상으로 불편한 손 때문에 범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수사 당국은 그를 풀어 준다. 경찰은 뒤늦게 백광호가 사건 목격자였음을 눈치 채고 그를 쫓지만 이를 위협으로 느낀 백광호는 달아나다 열차에 치여 숨지고 만다.

영화가 모티프로 삼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경찰이 찾아내 화제이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수사는 영화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인권 침해와 부실로 얼룩져 있다. 첫 사건이 발생하고 2년여 뒤인 1988년 교회 땅을 알아보러 다니던 30대 전도사가 용의자로 몰렸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990년에는 동네 목수가 용의자로 조사받은 뒤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수사 대상자 중 환각제 상습복용자가 투신해 숨졌고, 꿈에 범인을 봤다는 자칭 심령술사의 제보를 믿은 경찰 수사를 몇 차례나 받은 뒤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

이번에 특정된 인물이 사건 발생 기간 범행 장소 반경 3㎞ 안에서 살았고 당시 작성된 몽타주와 생김도 비슷했다는데 경찰이 용의자 혈액형을 B형으로 예단하는 바람에 놓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포기하지 않은 집요한 수사가 30년 만의 성과를 낳은 것은 칭찬받을 만하나 당시의 부실 수사는 씻을 수도 없고 되풀이해서도 안 될 경찰의 과오임에 틀림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검찰 수사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애초 수사가 대통령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장관 지명자를 낙마시키려는 야당의 고발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사안에 이처럼 전례 없는 규모의 검찰 수사가 합당하냐는 의문을 품을 만하다. 형사부도 아니고 특수부 인력이 대거 동원돼 조 장관 집까지 포함해 70곳에 가까운 압수수색을 벌인 전례가 지금까지 어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있었는지 묻고 싶다.

검찰이 첫 단추를 잘못 끼는 바람에 마치 쳇바퀴라도 돌 듯 수사 과정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은 검증 없이 앞다퉈 언론에 보도되고 야당은 다시 이를 근거로 정치 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제는 조 장관을 둘러싼 의혹이 아니라 조 장관 부인 기소, 조 장관 집 압수수색이라는 검찰의 행위가 그가 사퇴해야 할 결정적 이유가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법집행은 국민의 권익 보호라는 공익적 필요에 합당한 수준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며 “수사를 개시할 공익적 필요가 있는지, 기본권 침해의 수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어느 지점에서 수사를 멈춰야 하는지 헌법정신에 비추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법집행 권한을 객관적, 합리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고소ㆍ고발 사건에 기계적으로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인사청문회에서 해명되지 않은 ‘중대 의혹’을 검찰이 수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수사 내용을 볼 때 검찰이 얼마나 중대한 의혹을 캐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비록 엎질러진 물이긴 하지만 윤 총장은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가 “공익”에 부합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경찰의 부실한 수사는 과학이 구원하기라도 했지만 검찰의 분별없는 수사는 누가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권력이 자성하지 못해 시민이 일어서는 역사는 더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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