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강인(18ㆍ발렌시아)의 리그 데뷔골이 터졌다. 임대 이적만이 살 길로 여겨졌던 시즌 개막 전 신세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대반전이다. 지난 12일(한국시간) 부임한 발렌시아의 새 감독 알베르트 셀라데스(44)가 부여한 출전 기회를 완벽히 살려낸 이강인은 이제 팀 내 유망주를 넘어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성인무대에서도 ‘이강인 시대’가 열릴지에 대한 기대도 높다.
이강인은 26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에서 열린 2019~20 스페인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6라운드 홈경기에서 데뷔 첫 정규리그 선발과 함께 1호골을 터뜨렸다. 73분간 맹활약 한 그는 팀이 2-1로 앞서던 전반 39분 호드리고 모레노(28)의 낮게 깔린 크로스를 페널티 박스 내 중앙에서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2011년 스페인 무대로 건너가 가족의 희생과 뒷바라지 속에 성장해오던 ‘슛돌이’가 성인무대에서도 주인공이 된 순간이다. 앞서 전반 30분과 34분 발렌시아가 기록한 득점 상황도 그의 패스에서 시작됐다. 이날 팀이 기록한 세 골에 모두 관여한 셈이다. 다만 팀은 3-3 무승부로 경기를 끝냈다.
이날 이강인의 득점은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큰 선물이자, 발렌시아 구단의 새 역사였다. 셀타비고 소속으로 2012년 9월 득점을 기록한 박주영(34ㆍ서울) 이후 7년 만에 라리가에서 득점한 한국인이 된 이강인은 발렌시아 구단 외국인 최연소(18세 218일) 득점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기존 기록은 18세 326일의 나이로 득점한 모모 시소코(34ㆍ프랑스)가 가지고 있었다. 굳이 외국인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클럽 역사상 세 번째 어린 나이로 정규리그에서 득점한 선수가 됐다. 발렌시아 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팀 동료 페란 토레스를 제쳤으며, 후안 메나와 페르난도 고메스만이 이강인의 앞에 있다”고 강조했다.
시즌 개막 전 마르셀리노 토랄(54) 체제에서 전력 외 선수로 여겨지며 임대 이적까지 추진됐던 그의 대반전 활약에 감독 현지 언론의 찬사도 뜨겁다. 스페인 ‘엘 파이스’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 골든볼 활약을 언급하면서 그의 활약을 조명했다. 축구 통계전문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은 이강인에게 평점 7.3점을 부여했다. 이날 두 골을 몰아넣은 고메스(8.1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평점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소속팀 감독 교체 후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며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폴란드에서 막을 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끈 그는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까지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가 성인무대에서도 통할지에 대한 물음표는 떼어내지 못했다. 지난 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조지아와 평가전에 깜짝 선발출전 해 A매치에 데뷔했고, 12일 소속팀 감독이 바뀐 뒤부터 후반 교체 선수로 활용되며 점차 팀 내 입지를 늘려가는 모습이었지만 리그에서의 공격포인트가 터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이강인은 주눅들지 않았다. 소속팀에 서서히 녹아 들던 그는 이날 득점을 포함한 맹활약을 펼치며 의문부호를 떨쳐냈다. 경기 후 줄곧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이강인은 이날 경기 후 구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마다 팀이 이겨 승점 3점을 얻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득점으로 팀에 도움이 돼 기쁘지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승점 3점을 가져오지 못해 아쉽다”고 담담히 소감을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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