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14년 9월 26일(현지시간) 멕시코 남서부 지역 게레로주에 있는 아욧치나파 지방 교육대학교 학생 100여명이 상경 집회를 하기 위해 수도 멕시코시티로 향하다 경찰과 맞닥뜨렸다. 1968년 잔인하게 무력 진압당한 학생 운동 참가자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하는 집회였기에 학생들은 올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학생들은 추모 집회의 참가자가 아닌, 추모 집회의 대상자가 되고 말았다. 동료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이들이 발견한 것은 총격으로 벌집이 된 버스와 사늘한 시신으로 변한 친구들, 그 사이에서 울고 있는 ‘생존자’들이었다.
이 연례 집회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광역버스 몇 대를 점거해 이뤄져 왔다. 일종의 ‘하이재킹’으로 볼 수 있지만, 현지 증언에 따르면 학생운동 문화의 일환으로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행위라고 한다. 학생들이 차량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 않고, 집회 후 원래 주인에게 차량을 돌려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한 가지의 계획이 더 있었다. 멕시코시티로 가기 전, 사건 발생지인 이괄라시 시장의 아내가 주최하는 행사의 반대 집회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경찰은 학생들을 저지하라는 시장의 명령을 받고 출동했다.
이후 상황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현장에서 3명의 학생과 집회와 관련이 없던 민간인 3명이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했고 부상자도 25명에 달했다. 진압 작전을 완료한 경찰은 학생들을 연행했는데, 이 중 43명이 행방불명됐다.
수사 과정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범죄 조직인 ‘게레로스 우니도스’에 넘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학생들을 넘겨받은 조직은 이들을 살해해 시신을 불태운 후 유기했다. 경찰이 범죄 조직에 청부살인을 의뢰한 셈인데, 의뢰를 받은 게레로스 우니도스의 수장은 이괄라시 시장 아내와 남매 사이었다.
사건 발생 나흘 후 휴가를 내고 잠적한 시장 부부는 도피 생활 한 달여 만에 체포됐다. 범죄 조직원과 현직 경찰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 142명이 수사 과정에서 체포됐지만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현재까지 아무도 없다. 이 중 77명 석방됐고, 시장 부부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미결수 신분으로 수용 중이다.
무려 5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단 한명의 ‘범인’도 확정되지 않은 이유는 수사 당국이 증거를 위법하게 수집한 탓이 크다.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 증거 조작 등의 사례가 적발돼 잡았던 범인도 놓아줘야 했던 경우가 허다하다. 범죄 조직과 결탁한 부패한 공권력에 희생된 이들이 사후에도 부패한 공권력 때문에 안식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대변하듯 아욧치나파 지방 교육대학교 교정에 걸려 있는 한 희생자의 초상화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눈물 대신 용기와 정의로 제 죽음을 기려주세요”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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