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나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어이구, 선생님! 그 동안 창피해서 말을 못했는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물어물어 찾아왔슈. 아래가 빠지니께 소변을 볼라믄 거시기 해서.... 손구락을 넣어서 밀어올림서 힘을 있는 대로 줘야 소변이 찔찔 나온다니께요. 내가 아주 이것만 없어지면 살 것 같어...” 농사일을 하다 까맣게 탄 피부에 쭈글쭈글 주름진 얼굴이 그 간의 고생을 대변하는 것 같은 70대의 할머님이 진료실에서 하소연을 했다.
밤낮으로 자주 소변을 보는데 시원하지도 않고, 잘 나오지도 않으니 힘을 잔뜩 줘야 하는데 힘을 주면 아래가 빠지니 아프고 힘들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변비도 있어 더 괴롭다고 한다.
짐작이 가기에 진찰을 했다. 예상대로 방광이 참외만하게 질(膣) 입구로 빠져 내려와 있었다. 힘주면 더 많이 빠지니 소변이 잘 나올 리 없다. 그러니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밀어 올리면 그나마라도 소변이 좀 나오지만 그다지 시원하게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직장 부근 뒤쪽 질도 튀어 나와 장에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대변도 시원치 않았다.
이렇게 방광을 지탱하는 근육이 느슨해지거나 찢어져 질 쪽으로 불룩히 튀어 나오는 것을 ‘방광류’라고 한다. 직장이 빠져나오면 ‘직장류’, 더 위쪽 자궁이 아래로 빠져 나오면 ‘자궁탈출증’이라고 한다. 방광·자궁·직장은 모두 골반 안에 있는 장기다. 이들 장기를 골반 마룻바닥 역할을 하는 골반저근이 단단히 지탱하고 있어 힘을 아무리 줘도 몸 밖으로 빠져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임신, 출산, 폐경, 자궁암수술, 직장암수술, 골반의 방사선 치료, 골반 골절 등 골반저근이나 신경이 손상되면 밑으로 빠져 나온다. 다행히 질이라는 중간 통로가 막고 있어 내장이 몸 밖으로 빠져 나올 일은 없지만 질이 느슨해지면서 질벽이 불룩히 튀어나오거나 자궁이 질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골반장기탈출증이 심하면 장기가 골반 아래로 처지면서 주변 신경과 혈관을 누르면서 소변이 내려가는 통로(요관)가 함께 눌려 콩팥이 붓는 수신증(水腎症)이 생길 수 있다. 대부분 양쪽 요관과 콩팥이 둘 다 붓기에 자칫 콩팥이 망가질 수 있다.
대부분 아래가 빠지는 것 같거나 탈출된 것이 만져지기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시원치 않고 요실금까지 있다면 세심히 치료해야 한다. 간혹 소변 증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빠져 나온 골반 장기를 원위치로 되돌리는 수술을 하면 복압성 요실금(기침, 재채기, 배에 힘줄 때 소변이 새는 것)이 뚜렷해지거나 교정 후 소변을 너무 자주 보거나 참지 못해 지리는 절박성 요실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방광류 같은 골반장기탈출증은 어떻게 치료할까. 기본적으로 찢어지거나 약해진 골반 근육을 보강하면서 방광을 원위치로 되돌린다. 전에는 배를 열어 방광을 들어 올려 골반 안을 둘러싼 근육과 인대에 꿰맸다. 하지만 수술 후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생겼다. 배를 가르기에 이전 수술이나 복막염으로 장기 유착이 심하거나 고령이라면 수술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임시로 질 안에 ‘페사리’ 기구를 집어 넣어 더 이상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받쳐주기도 했다.
의술이 발달하면서 현재에는 방광을 지탱하는 근육을 질 쪽에서 거꾸로 밀어 넣어 봉합하기도 한다. 최근엔 복강경이나 로봇을 이용해 배꼽을 통해 골반 안에 들어가 느슨해진 근육을 봉합하고 방광을 원위치로 되돌리는 수술이 흔하다. 특히 로봇 수술은 모니터를 통해 3차원적으로 확대된 모습을 보면서 수술하기에 골반 같은 좁고 깊은 공간에서 한결 수월하게 수술할 수 있다. 개복 부위도 적어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수술 상처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방광류를 포함한 골반장기탈출증은 로봇 수술이 대세다. 비뇨의학과 의사로서 로봇으로 골반장기탈출증을 수술하면 무너져 내리고 정리되지 않았던 천장을 다시 완벽하고 평평하게 되돌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환자도 같은 기분이리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