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시대 장기요양보험] <상> 서비스 개선 발목 잡는 저예산 상>
전남 나주시에 사는 김민주(30)씨는 차로 30분 이상 떨어진 영암군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가 항상 불안했다. 관절이 안 좋아 거동을 거의 못하는데도 할머니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자택에 혼자 살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하루 2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찾아오는 재가요양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할머니는 매일 따뜻한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집안도 깨끗해졌다. 수요일마다 방문목욕 서비스를 받고 비뇨기과 병원에 통원 치료를 하면서 몸에서 풍기던 소변 냄새도 사라졌다. 요즘은 복지용구로 제공 받은 휠체어와 실버카(실내 이동기구)를 이용해 집안에서 혼자 이동하는 재활 연습 중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내가 다 할 수 있다’며 장기요양 등급판정 받기를 극구 거부하셨는데 지금은 신체와 정신건강이 모두 나아지고 요양보호사 선생님 오는 시간을 기다리신다”고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돼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시작한 지 11년이 지났다. 30일 건보공단에 따르면 현재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급자의 수는 지난해 기준 65만명에 달한다.
장기요양 등급판정을 신청해 인정 받은 사람의 수는 2008년 제도 도입 첫해 21만4,000명에서 지난해 67만명으로 세 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이 기간 전체 노인 인구 대비 인정자 비율은 4.2%에서 8.8%까지 증가했고, 지난해 기준 등급 신청자 대비 인정자 비율이 최초로 80%를 돌파하는 등 대상자 확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양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노인 돌봄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서울요양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요양시설을 민간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수익만 쫓으려는 요양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환경이 열악한 요양원에서 종사자에 의한 방치, 학대가 일어나는 사례가 아직도 종종 적발되다 보니,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요양원 입소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다.
요양시설의 보호사 수는 입소자 2.5명 당 1명으로 규정돼 있지만 24시간 교대 근무라는 점과 휴일 등을 고려하면 실제 한 사람의 보호사가 돌보는 인원은 5, 6명에 달한다. 영세한 재가요양기관의 난립으로 과당 경쟁과 폐업도 빈번하다. 이미 과잉공급 상태인 장기요양기관은 지난해에도 늘어나, 전년 대비 재가 기관은 6.0%, 시설기관은 0.3% 증가했다.
이 같은 문제점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면서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양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와 질 향상을 주장해 왔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역시 이 같은 제언을 받아들여 법ㆍ제도와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고 이용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시범사업을 해 오고 있다.
먼저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열린 제3차 장기요양위원회에서 올해 양기요양 수가 및 보험료율을 의결하면서 그동안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던 요양보호사ㆍ사회복지사 등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보험수가를 높여주고 장기근속 장려금도 인상했다. 장기요양기관 평가를 올해부터 서비스 질 위주로 개편했고, 평가 회피를 위한 폐업을 막기 위해 요양기관 지정 시 심사도 강화했다.
건보공단은 올해만도 4가지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만성 중증 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의료ㆍ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요양실’ 시범사업, 요양시설 촉탁의와 간호사 간 원격 협진 시범사업, 재가서비스 이용자에게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차량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지원서비스 시범사업, 주간 또는 야간보호시설 이용자의 가족이 일시적으로 수급자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 일정 기간 동안 계속 보호해주는 단기보호 시범사업 등이다. 모두 시범사업 기간이 끝나면 적정성이나 효과를 평가해 본사업 전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시설과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로 인해 장기요양보험 당기수지는 2016년부터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2025년 인구의 20%가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급여 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재정 투입은 불가피한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정 부담이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감수하더라도 노인 복지 차원에서 돌봄 서비스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재 요양원의 2.5 대 1 인력기준이나 4인 1실 기준은 국제적으로 볼 때 뒤떨어졌지만 재정을 고려해 최하 기준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재정 부담이 따르겠지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국민들의 동의를 끌어내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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