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까멜리아 ㆍ게장거리 등 주요 장소 배경
지난달 18일부터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등장한 술집 까멜리아는 건물 자체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은 마당과 지붕 딸린 우물까지 갖춘 2층 목조주택의 까멜리아는 촬영용 세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1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마을 주민들의 예술활동 공간으로 이용되는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의 옛 일본인 가옥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까멜리아 외에도 극중 미혼모로 나온 동백이 아들 필구를 키우기 위해 터전을 잡은 동네 옹산게장거리 등이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됐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특히 지난 1991년 역대 드라마 중 평균 시청률 8위를 기록했던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구룡포항 일본인 가옥거리는 1906년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어업단이 80여 척의 배를 끌고 고등어 등 어류 떼를 따라 구룡포항에 정박하면서 조성됐다. 구룡포는 예부터 동해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로, 어족이 풍부한 동해에서 장기간 조업에 나선 일본인이 늘어나면서 일대 일본인 거주지도 점차 확대됐다. 통조림 가공공장과 선박 수리소에 이어 병원 및 백화상점, 요리점, 여관 등이 생겨났고 1932년에는 300가구, 1,161명의 일본인이 사는 집단 거주지역이 됐다.
해방 후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10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일본식 건물은 80채 정도다.
포항시는 구룡포 일본인 집단거주지역의 옛 모습을 일제 착취 흔적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 2011년 3월 457m 구간의 건물 28개동을 보수해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로 이름 붙였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일본식 냉면이나 차를 파는 음식점도 생겼다. 가옥거리 오른쪽 끝에 위치한 집은 1920년대 이곳에 살았던 일본인 하시모토 젠기치의 살림집으로, 포항시가 매입해 근대역사관으로 운영 중이다. 100년 전 일본인의 가옥 구조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곳곳엔 아직도 드라마 촬영이 남아 있는 듯, 극중 지명인 ‘옹산게장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과 안내도 등이 붙어 있다. 젊고 예쁜 동백을 질투해 괴롭히는 옹산게장골목의 옹벤져스가 모이는 떡집과 동백이 열무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채소가게도 볼 수 있다. 드라마에만 나오는 게장가게를 관광객들이 실제로 착각하고 음식을 주문할 정도로 간판 등은 그대로 설치돼 있다.
동백 역의 배우 공효진과 동백을 좋아하는 황용식 역의 배우 강하늘이 동화 속 풍경 같은 배경에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드라마 포스터를 촬영한 곳은 가옥거리 뒷산에 위치한 구룡포공원이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 마지막 칸에 앉아 두 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한 뒤 카메라를 열면 작은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까지 구룡포 일대 아기자기한 풍광이 담긴 ‘인생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준영 포항시의원(구룡포읍·장기·호미곶면)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가 일제 수탈의 흔적을 미화한다는 일부 비판이 있지만 직접 와서 보면 일제 강점기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다”며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관광객이 많이 늘어 지진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구룡포 주민들의 얼굴도 동백꽃처럼 활짝 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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