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실험 결과로 본 고양이의 재발견
충실하고 사교적이다. 몸에 물을 묻혀 불길에 휩싸인 주인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런 개와 달리 반려동물의 또 다른 대표주자인 고양이에 대한 시선은 크게 다르다. 독립적이어서 강한 유대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양이도 개나 유아만큼 강한 유대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도한 줄로만 알았던 고양이의 ‘재발견’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은 새끼 고양이 70마리와 성장한 고양이 38마리를 대상으로 개와 유아에게 했던 애착 실험을 똑같이 진행했다. 우선 이들은 몇 개의 장난감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는 방바닥에 원을 그려 넣고 새끼 고양이의 주인을 앉게 했다. 새끼 고양이가 원 안에 들어오면 눈을 마주치는 등 상호작용 할 수 있지만 원 밖에 있을 땐 이런 활동을 하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2분을 보낸 뒤 새끼 고양이를 2분 동안 방에 홀로 남겨뒀다. 그런 다음 다시 방에 들어가 원 안에 앉았을 때 새끼 고양이가 어떤 애착 행동을 보이는지 살펴봤다. 영유아가 양육자와 정서적 유대를 발달시켜가는 과정을 설명한 ‘애착 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애착은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의심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안정적 애착과 그렇지 못한 불안정적 애착으로 나뉜다. 불안정 애착에는 양육자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회피 애착과 양육자가 사라지면 불안에 휩싸이고 돌아와도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는 등 지나치게 의존하는 양가 애착 등이 있다.
새끼 고양이와 주인이 형성한 애착관계에 따라 고양이가 하는 행동도 달랐다. 안정적 애착을 가진 고양이는 주인이 돌아왔을 때 주인과 잠시 교감한 뒤 방을 돌아다니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반면 회피 애착을 가진 고양이는 숨거나 주인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양가 애착이 있는 새끼 고양이는 주인의 무릎에 앉아 끊임없는 관심을 요구했다.
안정적 애착을 형성한 고양이는 45마리(64%)로 비율이 가장 높았다. 30% 남짓이 양가 애착, 나머지가 회피 애착을 보였다. 고양이의 안정적 애착 비율은 유아(65%)와 비슷하고, 개(58%)보다 오히려 높았다. 지난달 23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연구결과를 게재한 이들은 “고양이의 사회성, 주인과 쌓은 애착의 깊이가 그간 과소평가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새끼 고양이의 애착 관계는 성장한 뒤에도 이어졌다. 성장한 38마리의 고양이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한 결과 25마리(65%)가 안정적인 애착을 보였다. 고양이의 애착관계가 바뀔 수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낯선 사람과 어울리게 하는 등 6주간의 사회화 훈련을 한 다음 진행한 동일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 형성된 유대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적이 된다”며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울 때 초기 상호작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결과는 고양이가 살기 위해 주인을 이용한다는 편견을 뒤집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한 유대관계가 없었다면 인류와 고양이가 그토록 오랜 시간 함께 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2017년 6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콜로지&에볼루션’에 실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벨기에 루벤대 등 국제공동연구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 주로 살던 고양이들은 기원전 4400년경 서남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약 9000년 전 만들어진 유럽의 무덤이나 이집트 미라 등에서 발견된 200여 마리의 고양이에게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다.
기원전 4400년경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터키와 시리아 등에 사람들이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다. 남는 곡식이 생기면서 쥐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사냥감인 쥐들을 따라 고양이가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됐다는 얘기다. 고양이는 설치류를 통해 퍼지는 질병을 막는 등 인류에게도 큰 도움을 줬다.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고양이는 약 5억 마리로 추산된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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