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수천 년 전 인간의 거주지 부근에서 동물 뼈가 대규모로 발견된다면 고고학자뿐 아니라 대중도 모두 궁금해 할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한꺼번에 죽었을까? 아니면 이들은 왜 모두 여기에 한꺼번에 묻혔을까?
◇한 장소에 매립된 고대 동물의 유골들
고대 바스테트 신전 근처에서 기원전 4세기경 것으로 추정되는 약 3,000구의 고양이 미라가 발견된 적이 있다. 한때 신전 근처에서 발견되는 동물 미라는 신성한 동물이 죽었을 때 예의를 갖춘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지만, 이곳 미라 속 고양이들은 대개 새끼 고양이들로 목이나 척추가 부러져 있었다. 신전에 봉양할 요량으로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여서 미라를 만들어 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동물 유존체(동물이 폐사하면서 남긴 신체 부위 중 장기간 보존된 것)가 모두 동물을 대량으로 죽인 흔적은 아니다. 2011년 홍해 연안의 고대 이집트 항구 마을인 베레니케(Berenike) 외곽에서는 100구 이상의 동물 유존체가 발견됐다. 86마리의 완전한 형태의 고양이 유골이 발굴되었고, 몇몇 고양이는 금속 장신구를 두른 채 묻혔다. 어린 개체와 성체의 비율도 비슷했다. 동물의 뼈를 의도적으로 부러뜨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들은 그야말로 애완동물의 무덤이었던 셈이다.
한편, 일본 가마쿠라 지역에서는 인간과 소, 말은 물론 물고기와 돌고래의 뼈가 섞여 있는 거대한 매립지가 발굴된 적이 있다. 3,000여구의 사람 유골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의 뼈도 함께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들이 묻힌 시기가 1293년 대지진 즈음일 거라고 추측했다. 당시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강도 7이 넘는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쓰나미가 발생했다. 2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가축과 야생동물도 그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매립지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는 대부분 온전하게 묻혀 있었다. 즉, 먹거나 다른 용도로 이용하고 버려진 유존체가 아니었다. 당시 가마쿠라 지역 사람들은 불교 문화의 영향 아래 육식을 하지 않았고 고래를 잡는 산업도 발달하지 않았다. 매립지에 한꺼번에 묻힌 인간과 동물들은 아마도 쓰나미의 피해자였을 것이다. 재해 이후 피해자들의 장례를 치르고 매장하는 과정에서 모든 생명에게 자비를 베푸는 불교의 풍습에 따라 죽은 동물들까지도 함께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하게 그리스에서는 성별과 연령이 다양한 20명의 사람과 말, 소, 돼지, 양, 염소, 개 등의 가축이 한꺼번에 묻혀 있는 기원전 4세기경의 무덤이 발견됐다. 사람만 묻혀 있다면 아마도 전쟁 피해자이거나 노예들, 전염병의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동물의 뼈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요인들이 고려되었다. 홍수나 해일이 있었던 곳에 만들어지는 ‘포세이돈 피난처’의 흔적에서 이들 동물과 사람들이 모두 수해의 피해자일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동물의 떼죽음
미스터리에 싸인 역사 기록이나 유골이 쌓인 고고학 유적지를 찾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수의 동물이 죽음을 맞는 사건은 사실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2011년 구글 맵에 전세계에서 발생한 ‘동물의 떼죽음’(Mass Animal Deaths)을 표시한 지도가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다. 당시 지도에는 2011년 한 해 동안 약 30곳에서 벌어진 새와 어류, 바다 포유류들의 원인 모를 죽음이 표시되었다. 지도에서는 아시아 지역인 일본, 필리핀, 홍콩에서 한꺼번에 많은 수의 어류가 폐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무심하게 넘기고 있지만 지난 한 주 동안만 해도 아프리카 한 해변에서는 돌고래 200마리가 죽은 채 해변으로 밀려왔고, 칠레에서는 60년 만의 큰 가뭄으로 가축 3만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돌고래 우두머리가 방향성을 상실해 무리가 해안선으로 밀려왔는데 대부분이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칠레는 가뭄으로 인해 풀이 자라지 못하고 먹을 물도 구하기 어려워 가축을 먹이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1940년대 이후 동물의 떼죽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질병이나 독성 화학물질 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와 물고기 그리고 바다 생물의 떼죽음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 사실, 질병이나 지진이나 산불과 같은 재난, 기상 이변, 자기장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사라지거나 먹이가 부족해지는 이차적 피해까지 포함하면, 안타깝지만 동물의 떼죽음은 때로는 ‘자연적인’일이다. 그러나 아주 많은 상황은 매우 ‘인간적’일 수도 있다. 돌고래의 죽음만 보더라도 폐수로 인한 담수와 해양 오염, 농약 살포나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 오염 같은 원인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는 해양생물들이 방향을 잃는 이유로 수증음파탐지기를 사용하는 군사훈련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또한 저인망 어선의 대규모 조업이 시작되면 작은 고래류들이 피하지 못하고 포획되는데 이들은 포획된 채 죽거나 풀려나더라도 상처로 인해 죽게 된다.
◇인간이 만든 또 다른 떼죽음
세계2차대전 이후 환경에 대한 인간 활동의 영향이 극대화되었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칭한다. 기존의 지질시대 구분과는 다른 차원의 시대이다. 인간이 과거에는 이용하지 않던 땅을 개발하고 가축을 키우면서 생물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로 인해 종래에 없던 지질 구조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 사람들이 사육하고 먹어치우는 닭의 수가 지구의 역사상 가장 많기 때문에, 후에 현재의 지질시대를 닭뼈로 구분하여 치킨세라고 부를 것이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에 10억마리의 닭이, 그리고 1,600만마리의 돼지가 도살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떼죽음을 야기하고 있다. 질병 방역을 위한 가축의 살처분이다. 18세기 이후 인간은 질병으로 죽은, 또는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질병 예방을 이유로 죽인 가축들을 위생상의 이유로 매립해 왔다. 매립지에는 생석회가 뿌려지고 가죽을 벗기거나 신체의 일부를 이용하지도 않은 채로 어마어마한 수의 동물의 사체는 한곳에 묻힌다. 어쩌면 천 년쯤 후 인류세의 지질학적 특징은 대규모로 매립된 가축 유존체가 될지도 모른다. 2011년 구제역으로 돼지 330만마리를 땅에 묻은 이후에도 우리는 꾸준히 매년 크고 작은 규모로 가축을 죽여서 묻고 있다.
2주 전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한반도에서 발생했다. 돼지에게는 치명적이며 축산농가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이 질병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과 자원이 투여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강화도에서는 사육하던 돼지 4만마리 모두를 살처분하여 매립했다. 토양에서도 오래 살아남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특성상 해당 지역에서 양돈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질병의 원인체도 변이되고 진화하는 생명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라 이들이 세력 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지구상에는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많은 수의 인간과 가축이 살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기후는 상당히 급격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가축의 전염병은 새로운 양상으로 더 빈번하게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매 계절마다, 질병마다 우리는 같은 매립을 반복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가 먹고, 버리는 음식물과 키우는 가축의 규모와 키우는 방식에 대해, 축산을 위한 토지의 이용에 대해, 즉, 지속 가능한 인간과 동물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의 한 구절은 이제 단순히 화학 살충제의 중독 위험을 강조하는 우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실제 벌어질 일일지도 모른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암탉이 알을 품던 농장에서는 그 알을 깨고 튀어나오는 병아리를 찾을 수 없었다. 농부들은 더 이상 돼지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고 불평했다.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잠겼다. 사람들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 (‘내일을 위한 우화’, 『침묵의 봄』, 레이철 카슨)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