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면 시위는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IS(이슬람국가)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얼굴을 감추고서…”라며 집회 참가자들을 테러리스트에 빗대어 언급했다. 그가 지칭한 해당 시위는 13만여명이 참가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쌀 수매가 인상, 노동법 개악 반대 등을 외쳤던 열흘 전의 ‘민중총궐기 대회’였다. 그 시위에서 농민 백남기씨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 바로 다음 날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자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집회에서 복면을 쓰면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이 ‘복면금지법’은 복면을 비롯한 시위 물품이 폭력행위로 연결될 것으로 ‘추정’되면 해당 물품의 제조ㆍ보관ㆍ운반까지 처벌토록 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헌법이 보장한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자, 새누리당은 미국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 등 주요 선진국들도 복면금지법을 시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 ‘복면금지법’을 시행 중인 나라는 15개국 정도다. 대부분 종교적 이유나 약자 보호 목적이고 집회ㆍ시위 참가자를 직접 겨냥한 나라는 러시아 등 극히 일부다. 15개 주(州)에서 시행 중인 미국은 1830년대 소작농 보호정책에 반대하는 농장주들이 원주민으로 변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출발했고 1950년대부터는 ‘KKK단’ 등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횡포를 막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문제 등 종교적 이유가 컸다. ‘노란조끼’ 시위에 놀란 프랑스 정부가 법을 개정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시킨 것은 올해 들어서다.
□ 홍콩 행정당국이 5일 0시를 기해 모든 집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고 시간과 장소에 무관하게 경찰의 신원확인 요구에 응해야 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에 들어갔다. 위반 시 최고 1년의 징역형이나 2만5,000홍콩달러(약 38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 계엄령에 준하는 ‘긴급법’을 52년 만에 발동해 행정명령으로 일단 시행하고, 16일 친중파가 다수인 입법회(의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복면금지법’으로 되려 시위대의 규모가 커진다는데 경찰은 14세 소년에게까지 실탄을 쏘았다. 마음이 아리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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