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상품권이나 휴대폰을 구입하게 한 뒤 수수료(이자)를 제외한 금액만 돌려주고 물건을 넘겨받는 행위(속칭 ‘상품권ㆍ휴대폰 깡’)는 미등록 대부업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런 거래는 물건값을 할인해 사들이는 ‘매매행위’에 불과할 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전 대부’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27)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2,5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2015년 김씨는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고 인터넷에 ‘소액대출, 소액결제 현금화’ 광고를 올린 뒤 이를 보고 연락을 해온 의뢰인에게 상품권을 구매하게 했다. 그는 이자 명목의 수수료를 뗀 뒤 상품권 액면가의 77.8%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줬고, 상품권은 다시 업자에게 팔아 판매대금을 챙겼다.
검찰은 이런 식의 ‘상품권 깡’이 미등록 대부업에 해당한다고 판단, 김씨에게 대부업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1ㆍ2심 모두 “의뢰인들이 김씨에게 선이자가 공제된 돈을 빌리고 나중에 원금 전액을 변제해야 하는 형식이었다”며 대부업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씨가 의뢰인에게 상품권을 싸게 사들이면서 돈을 준 것은 (대부행위가 아니라) 할인 매입에 해당한다”며 “대부업법의 규율 대상인 금전 대부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도 의뢰인에게 휴대폰을 구입하게 한 뒤 수수료 제외 금액을 주고, 휴대폰은 업자에게 팔아 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또 다른 김모(52)씨의 상고심에서 대부업법 위반 부분을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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