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만성적인 저금리와 오르지 않는 물가에 대응해 2008년 금융위기의 탈출구 역할을 했던 ‘양적완화(QE)’ 카드를 다시 꺼내 들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단기자금 시장 혼란에 맞서 자산 매입을 다시 검토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11월부터 한동안 중단했던 양적완화를 재개한다. 저금리로 전통적인 경기부양 수단이 바닥난 중앙은행들의 고육지책 성격이지만, 끝없이 꽂아 대는 응급주사가 오히려 부작용만 더 키울 거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9일 금융권과 외신에 따르면, 올해 4분기부터 미국 연준과 유로존의 ECB, 일본의 일본은행의 자산 규모가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연준은 과거 양적완화 시기에 매입했던 채권을 처분하는 ‘대차대조표 축소’ 정책을 예정보다 2개월 앞당겨 지난 7월 말 종료했다. 여기에 8일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9월 이후 일어난 단기 금리 급등락 현상을 막기 위해 연준의 보유자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발언하면서, 연준이 양적완화를 재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파월 의장도 이를 의식한 듯 “단기금융 시장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 양적 완화는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불경기에 시달리는 ECB는 이미 오는 11월부터 매달 200억유로 규모로 양적완화를 기한 없이 재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행도 규모를 조금씩 줄이고는 있지만 자산매입 정책 자체는 멈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은행의 총자산(8월말 5조3,880억달러ㆍ약 6,412조원)은 ECB(5조1,470억달러ㆍ6,125조원)를 뛰어넘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나 민간 채권 등을 매입해 시장에 돈을 직접 공급하는 정책이다. 기준금리가 이미 지나치게 낮아 더 내리기 어려울 때 쓰는 ‘최후의 유동성 공급 수단’이다.
앞서 연준과 ECB는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판단에 따라 보유자산 확대 정책을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다시 경기침체 조짐이 높아지자 양적완화 카드를 또 만지작거리는 셈이다. 중앙은행들의 연합체인 국제결제은행(BIS)은 7일 ‘중앙은행의 대규모 자산과 시장기능’ 보고서에서 양적완화의 금융시장 왜곡을 지적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런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디플레이션 위험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기에 “이득이 더 컸다”고 결론 내리며 지원 사격을 했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다. 유로존의 전직 중앙은행 총재들은 4일 공동성명을 통해 ECB를 비판하면서 “과도한 통화량이 자산 가치를 지나치게 올리면서 자산이 없는 이들과 연금생활자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향후 자산 가치 급락이나 경제 위기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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