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평화의 샘 작전 개시”… F-16 전투기 시리아 접경지 공격
쿠르드, 숙적 시리아에 SOS도… 트럼프, 터키 편들며 “에르도안 방미”
터키가 9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북부에 근거지를 둔 쿠르드족에 대한 대대적 군사 공격을 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시리아 내 미군 철수를 선언한 지 사흘만이다.
주변국의 끊이지 않는 핍박 속에 간신히 시리아 북동부에 근거지를 마련했던 쿠르드는 다시 중동 각국의 먹잇감 신세로 전락했다. 한때 이슬람국가(IS) 퇴치 전쟁의 동맹이었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대로 시리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미군이 떠난 틈에 터키는 쿠르드에 대한 대대적 공습 작전을 공식화했다. 오갈 데 없어진 쿠르드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어제의 적이었던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에까지 손을 내미는 처참한 처지에 내몰렸다. 미국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가운데 IS와 터키의 공세를 견뎌야 하는 쿠르드는 자칫 ‘인종청소’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된다.
이날 CNN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군과 시리아국가군(SNA)이 시리아 북부에서 ‘평화의 샘’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쿠르드 민병대(YPG) 축출을 위한 대대적 공습을 공식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은 터키 안보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터키군이 시리아 동북부 지역에 대한 공습을 포함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고 보도했고, AFP통신은 “터키와 시리아 간 국경지역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군은 이날 F-16 전투기와 포병대를 동원해 시리아의 터키 국경 지역인 라스 알 아인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 작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파레틴 알툰 터키 대통령실 공보국장은 “YPG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도망치거나 우리의 대(對)테러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며 쿠르드족에 대한 격멸 의지를 확인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라크, 터키 등으로부터 쫓겨 다닌 쿠르드는 미국이 이끈 대(對)이슬람국가(IS) 축출 작전에 참전했다. 2014년부터 IS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며 만들어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시리아 북동부 일대에서 최근 자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나온 미국의 시리아 내 미군 철수 결정으로 다시 ‘홀몸’이 됐고, 터키의 대대적 공습 위기를 눈앞에 두게 됐다. 터키는 쿠르드를 자국 내 분리주의 테러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 연계 세력으로 여기고 축출을 시도해왔다. 미군 보호막이 사라진 지금이 터키로선 쿠르드족을 절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급해진 쿠르드는 숙적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도움을 요청했다. 8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시리아 쿠르드 자치정부 고위 관리인 바드란 지아 쿠르드는 “미군이 전면 철수할 경우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리아 정부나 러시아와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이 지역, 특히 국경 지역을 비울 경우 우리는 가능한 모든 옵션을 고민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북동부 지역을 근간으로 정부 수립을 원했던 쿠르드에게 아사드 정권은 완벽한 독립을 위해 극복해야 할 사실상의 적대 세력이다. 숙적과의 연대를 모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곤궁한 쿠르드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아사드에 대한 쿠르드의 SOS 요청은 일종의 블러핑(외교적 허풍ㆍbluffing)일 수 있다. 철군을 시작한 미군을 돌려세우기 위해 아사드와 손잡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위터에 “중동에 미군을 보낸 것은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라며 시리아 내 미군 철수를 정당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이 터키가 미국의 큰 교역 상대라는 사실을 쉽게 잊고 있다. 터키(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는 11월 13일 내 손님으로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르드 공습을 공식화한 터키를 두둔하는 동시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미 일정까지 공식화한 것이다.
쿠르드는 결사 항전 태세에 돌입했다. YPG 계열의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코바니 사령관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항전할 것이다. 지난 7년간 전쟁을 치러왔다. 앞으로 7년 동안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밝혔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