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금리인하 폭’, ECB는 ‘양적완화 여부’ 놓고 각각 치열한 대립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교역 성장률 둔화의 여파로 세계 경기가 동반 하락할 거란 경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세계 중앙은행 중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이 모두 정책 대응을 놓고 치열한 내분을 겪고 있다. 보다 공격적인 통화 완화가 필요하다는 ‘비둘기파’의 주장에, 과도한 대응은 필요 없다는 ‘매파’가 강하게 맞서는 양상이다. 시장에선 이런 거대 중앙은행들의 혼란상을 또 다른 리스크로 우려하고 있다.
13일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공개된 ECB의 9월 정책위원회 회의록에서 참석자들은 최근 ECB가 11월부터 채권 매입, 즉 양적완화(QE)를 재개하기로 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이사진 6명과 유로존에 속한 19개 국가 중앙은행 총재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시장 상황에 대한 인식부터 예치금리를 -0.4%에서 -0.5%로 내리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재개 정책이 충분한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ECB의 내홍은 이미 겉으로 어느 정도 드러났다. 지난달 26일 ECB 집행이사 6인 중 한 명인 독일 출신 자비네 라우텐슐래거가 임기를 2년 남기고 10월을 끝으로 퇴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평소 매파였던 라우텐슐래거가 사표를 던지며 통화 완화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1일에는 ECB 내부의 사무국 직원들조차 양적완화 재개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출했으나 정책위원회에서 묵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국제금융그룹 ING의 카르스텐 브레스키 독일 수석 경제학자는 “ECB가 내전 상태에 빠졌는데, 이는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오더라도 즉각 대응책을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우려하며 “새 ECB 총재가 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내부 분열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고 논평했다.
연준도 내부 고민이 깊다. 올 초 금리 인상 행보를 전환해 7월과 9월에 금리를 각각 0.25%씩 인하했지만, 9일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내부에서는 금리 인하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과 인하의 한계 시점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회의록에 따르면 연준은 무역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예비적 성격의 금리 인하’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하게 제기됐다. 또 몇몇 참석자는 “시장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수준이 너무 높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미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공개된 위원 17명 개개인의 연내 금리 향방에 대한 의견이 인하 7명, 동결 5명, 인상 5명 등 크게 엇갈린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최근 금리 정책에 관해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파월 의장은 9일 연설에서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좋다”면서도 “성장의 지속을 지원하고 2% 물가상승률 목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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