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할인행사(정기세일)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기세일 가격 할인분의 절반을 백화점이 납품업체에 보상하라는 내용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오는 31일부터 시행할 예정인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 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특약매입 지침)’ 개정안에 대해 백화점 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지침은 ‘대규모 유통업법’의 적용 기준을 담아 2014년 만들어졌다. 기한이 31일로 종료됨에 따라 공정위는 3년간 이를 연장하며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유통업체가 가격할인 행사를 할 경우 납품업체에 할인분을 직접 보상하거나 판매수수료율을 그에 맞게 조정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정상 가격이 1만원이고 판매수수료율이 30%인 경우 20%를 할인해 8,000원에 판다면, 유통업체는 납품업체에 할인분(2,000원)의 절반인 1,000원을 주거나 판매수수료율을 할인가의 25% 이하로 조정해야 한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백화점 정기세일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들은 그 동안 정기세일 때 할인분의 10%만 부담해왔다. 1만원인 제품을 20% 할인할 경우 2,000원의 10%인 200원을 백화점이, 나머지 1,800원은 납품업체가 부담해온 것이다. 대규모 유통업법에 따르면 판매촉진 행사를 할 때 유통업체는 최소 50%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단 납품업체가 ‘자발적’으로 요청해 ‘차별화’한 판촉행사를 할 경우 판촉비용 분담 비율을 자율로 정할 수 있다. 백화점들은 1년에 네 차례(1, 3, 7, 10월) 진행되는 정기세일이 이 같은 예외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정기세일은 납품업체가 매출 신장과 재고 소진을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 판촉행사”라며 “백화점은 단지 마케팅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공정위 관계자는 “세일 기간부터 할인율 등을 납품업체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며 “정기세일은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공동 판촉행사니 판촉비용도 절반씩 분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백화점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49.7%가 ‘세일 할인율만큼 판매수수료를 할인하는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최근 1년 동안 중소기업의 3.3%가 ‘세일 행사 때 수수료율 인하 없이 업체 단가만 깎아달라는 (백화점의)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백화점 정기세일을 오로지 납품업체들의 자발적 판촉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공정위는 서류만으로 판촉행사의 자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개정 지침에 명시했다. 납품업체가 먼저 요청한 것처럼 유통업체가 서류를 만들어 강요하는 ‘꼼수’를 막겠다는 의지다. 또 가격 할인율이나 사은품 종류 등이 조금씩 다르다고 차별화한 행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백화점 정기세일이 대규모 유통업법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셈이다.
백화점들은 발끈하고 있다. 한국백화점협회는 개정안대로면 정기세일 뒤 백화점의 영업이익 감소율은 25%, 세일이 없을 경우 감소율은 7∼8%라고 추산했다. 세일을 안 하는 게 손해를 덜 본다는 주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세일이 없는 명품 등 고가 브랜드, 자체 마케팅 능력을 갖춘 대기업 브랜드는 큰 영향이 없다”며 “결국 독자적 홍보ㆍ마케팅 역량이 부족해 정기세일 때라도 재고를 소진해야 하는 중소업체나 소비자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납품업체 자발적으로도 얼마든지 할인행사를 할 수 있다”며 “백화점 업계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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