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맹산 정신” 강조하다 “검찰개혁 불쏘시개” 사퇴문으로 끝나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소명을 완수하겠다.”
8월 9일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54) 장관은 그날 곧바로 법무부가 마련한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의 인사청문회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ㆍ바다에 맹서하니 어룡이 꿈틀대고, 산에 다짐하자 초목이 알아듣네)라는 한시에서 나온 문구였다. 바다에 맹서(맹세)하고 산에 다짐한다는 의미다. 그는 또 “동시에 품 넓은 강물이 되고자 한다”며 “세상 여러 물과 만나고, 내리는 비와 눈도 함께하며 멀리 가는 강물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조 장관은 스스로 ‘품 넓은 강물’이 되겠다고 했으나, 지명 직후부터 그는 단 한 순간도 순탄하게 흘러올 수 없었다. 청문회를 거쳐 결국 장관 직에 올랐는데도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를 외치는 국민들이 광화문과 서초동을 번갈아 메웠다. 지난 두 달간 나라의 온 관심이 조 장관에게로 쏠리면서 ‘조국 홍역’을 치렀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지명 66일 만이자 취임 35일 만인 14일 조 장관은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 생각한다”며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를 둘러싼 숨가빴던 66일을 되돌아봤다.
◇시작부터 야당의 ‘정치적 타깃’된 조국
조 장관은 서울대 교수로 학계에 몸 담아왔다. 그는 부산 혜광고 졸업 후 만 16세이던 1982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최연소 입학했다.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사법고시를 보는 대신 학자의 길을 택했고, 26세에 울산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이 과정에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조직 가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어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01년부터 서울대에서 근무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진보진영이 정권을 되찾는 데 필요한 비전과 정책 등을 제시한 책 ‘진보집권플랜’을 펴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책을 읽은 게 인연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돼 공직과 정치의 길에 발을 들였다.
조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했지만 선출직 혹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임명직에 오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장관으로 지명되자 사실상 첫 검증이라는 점에서 논문, 재산증식 과정, 가족 사학재단 등에 대한 야당의 총공세가 예상됐다. 보수야권 역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야당 무시를 넘어 야당과 전쟁을 선포하는 개각”이라고 성토하는 등 시작부터 ‘정치적 타깃’으로 떠올랐다.
애초 정치권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 본 지점은 조 장관 개인의 처신 문제였다. 폴리페서 논란, 자녀를 외고에 보낸 문제 등은 ‘내로남불’ 공방을 예고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거친 말들을 늘어놓은 것도 논란거리다. 1993년 사노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도 초반 야권의 주요 공격 지점이 됐다.
◇자녀 ‘입시 의혹’으로 여론 요동
인사검증 국면 초기 사노맹 이력이나 동생 부부의 위장이혼, 사모펀드 투자 등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에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이던 정부ㆍ여당이었으나, ‘자녀 특혜 의혹’으로 여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조 장관의 딸이 두 차례 낙제를 하고도 3년간 장학금을 받았다는 의혹(본보 8월19일자 1면)을 시작으로, 단국대 의대 논문 제1저자 자격 문제,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 등이 불거진 것이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흙수저나 평범한 시민들 입장에선 국민감정에 반하는 일이 연속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조 장관 일가를 둘러싼 의혹도 잇따라 제기됐다. 가족 사모펀드, 웅동학원 재단 사금고화 등이 대표적이다. 조 장관은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펀드와 웅동학원 경영권 등 사재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강행 의지를 보였다. 이 와중에 검찰은 조 장관과 관련한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8월 27일 전격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정식 취임하면 검찰을 지휘ㆍ감독하게 될 법무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 그와 관련한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강제수사에 들어간 것은 이례적이었다.
◇지명 한 달 만에 임명 ‘강행’했지만
여야는 9월 2일과 3일 청문회를 열기로 어렵게 합의하고도 배우자와 딸 등 가족의 증인 채택 문제로 논란을 거듭하다 청문회 자체를 날려 버렸다. 청문회가 무산되자 조 장관은 지난달 2일 국회에서 별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그동안 제기된 주요 의혹을 해명하고 국민 눈높이와 어긋난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밤 10시에 남성 기자 둘이 (딸이 살고 있는 집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합니다.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언론의 과열된 취재 열기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달 6일 천신만고 끝에 조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서 기존 의혹을 뛰어넘는 결정적인 한방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청문회가 끝날 무렵 검찰은 부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하면서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지명 한달 만인 9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검찰개혁’ 불쏘시개는 여기까지”
조 장관이 험난한 임명 과정 내내 강조했던 사명은 ‘검찰개혁’이었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주문한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 장관은 지난 7일과 8일 각각 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 기관의 개혁안을 두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각자의 안을 발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어 조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특별수사부 명칭 폐지 및 축소’를 위해 관련 직제를 개정한다고 검찰개혁 방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앞서 윤 총장이 제안한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특수부 폐지안을 수용한 것이다.
검찰개혁안을 발표한 지 3시간여가 흐른 같은 날 오후 조 장관은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사의를 밝혔다. 조 장관은 입장문에서 “이유 불문하고, 국민들께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 곁에 있으면서 위로하고 챙기고자 한다”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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