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18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 재협상을 마무리 짓고 이달 말(31일) 예정대로 EU를 떠나려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협상이 막판 진통을 겪는 가운데 EU는 영국이 제시한 수정안을 거절하고 추가적인 양보를 압박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수석대표는 이날 오후 EU 27개 회원국 대사들에게 주말 사이 진행된 영국과의 브렉시트 실무협상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고, 존슨 총리가 빠른 타결을 원한다면 북아일랜드 관세 문제에서 좀 더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에 정통한 다른 EU 관계자도 “기한 내 협상 타결은 전적으로 영국 정부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쟁점은 여전히 EU 회원국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ㆍ통관 자유를 보장하는 안전장치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이 주말 협상에서 북아일랜드로 들어오는 모든 상품의 행선지를 추적한 뒤 최종 목적지에 따라 차별적 관세를 매기자는 수정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법적으로는 북아일랜드에 영국의 관세체계를 적용하고, 실질적으로는 EU 관세동맹 안에 남기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바르니에 대표는 “한 지역에서 두 개의 관세체계를 운영한 전례가 없는 데다 현대 공급망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각 상품의 행선지를 정확히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영국의 수정안이 과하게 복잡하고, 사기에 취약하며 브렉시트 이행기간(2020년 말) 안에 가동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정상회의 기간 내 협상 타결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날 존슨 총리도 각료들과 만나 “합의에 이르는 길이 보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양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다만 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타협안을 내는 등 의지를 보인 만큼 EU 내에서는 ‘노 딜’(No Deal)보다 브렉시트 기한을 추가로 연기하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오스트리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러지 않겠지만 존슨 총리가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를 거절하는 것은 역사에 어긋난다”고 동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14일 의회 개회 연설인 ‘퀸스 스피치’를 위해 국회의사당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연설에서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이후 안건은 영국을 세계 자유 무역의 챔피언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호적 협력과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EU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다이앤 애보트 노동당 그림자내각 내무장관은 “여왕의 연설은 말도 안 된다”며 “선거 전에 하는 정당 정치 방송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여왕의 연설문은 국왕이 직접 읽지만 내용은 정부 여당이 작성한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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