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설리가 14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악성 댓글의 폐해가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일명 탈코르셋 등 여성 문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설리는 생전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이들로부터 온라인으로 격한 공격을 당했다. 설리의 죽음이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남녀의 극한적인 대립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21분쯤 성남시 심곡동의 한 주택 2층에서 설리가 숨져있는 것을 매니저 A씨가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설리가 평소 메모를 하는 노트에 상당 분량의 심경 변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해당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설리는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팬은 물론 설리와 함께 일했던 관계자들도 갑작스런 소식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설리의 한 측근은 14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설리가 요즘 들어 부쩍 불안이 심해져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다”며 “설리가 최근 개인적인 일로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겨서 출연 중이던 JTBC2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에서도 하차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설리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정말 사실이 맞느냐”고 되물으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리는 2009년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 멤버로 데뷔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는 2014년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계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이듬해 그룹에서 탈퇴한 뒤 연기자 행보를 걸으며 영화 ‘리얼’(2017) 등에 출연했다. 이후 휴식을 가졌던 설리는 지난 6월 솔로 앨범 ‘고블린’을 발표하며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비췄다. 지난 5일에는 영화 ‘메기’의 감독, 주연배우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설리는 오랜 시간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된 그의 일상에는 환호보다 비난이 더 많이 쏟아졌다. 겉옷 안에 속옷을 안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주로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다는 비난이 많았다. 많은 여성들은 설리의 이런 행보에 오히려 지지를 나타내며 환호했다. 설리는 심지어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처음 공개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 열린 첫 팬미팅 ‘피치스 고블린’에서 “SNS에 고양이 고블린을 향해 ‘징그럽다’ ‘자기 같은 것만 키운다’며 무서워하는 글이 많았다”며 “(노래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악플에 당당하게 맞서야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이나 일면 악플이 그의 일상에 얼마나 큰 고통을 줬는지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특정 다수가 다는 댓글의 피해자들이 겪는 상처는 매우 크고,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기보다 시민단체 등이 나서서 온라인 행동강령 등을 만들고, 시민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성숙한 댓글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동료 연예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설리와 같은 그룹에서 활동했던 멤버와 동료 연예인들은 일정을 취소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에프엑스의 동료 멤버 엠버는 이날 SNS에 글을 올려 “예정된 활동을 미룬다”라고 알렸다. 2009년 같은 그룹으로 데뷔한 설리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잠시 연예 활동을 중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명 음악지 빌보드의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위를 차지한 슈퍼엠은 이날 강서구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진행할 예정이던 특집쇼 ‘슈퍼엠 더 비기닝’ 사전 녹화를 전면 취소했다. 슈퍼엠은 설리와 같은 소속사 식구다. SM 소속인 슈퍼주니어도 이날 오후 6시에 진행할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취소했다. 설리와 소속사는 다르지만, 동료 연예인들도 일정을 취소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록밴드 엔플라잉은 15일 오후 2시로 예정된 새 앨범 발매 쇼케이스 일정을 취소했다. 엔플라잉 소속사인 FNC엔터테인먼트는 “연예계의 안타까운 비보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행사 취소 이유를 밝혔다..
SNS엔 추모의 글이 잇따랐다. 가수 하리수는 SNS에 “정말 예쁘고 착하고 앞으로도 빛날 날이 많은 별이 안타깝게 됐다”고 고인의 넋을 기렸다. 설리가 생전에 악플로 상처를 받은 일에 대해선 “아무리 얼굴이 안 보이고 익명이 보장돼도 더러운 짓은 하지 말자”고 일침을 가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