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을 강타한 제19호 태풍 ‘하기비스’는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70여명에 달할 정도로 큰 피해를 남겼다. 일본은 재해 대책에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태풍에 대비하는 도쿄 내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달랐다. 태풍이 상륙하기 전날인 11일 오후 슈퍼마켓을 가니 이미 빵과 컵라면이 동난 상태였다. 주말 새벽에는 “노약자나 어린이의 경우 대피를 시작하라”는 경계 레벨3이 됐다는 방송과 울려대는 휴대폰 재난문자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재해 시 피해를 입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이번 태풍으로 일본에선 사람의 재해 대책은 물론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재해 대책도 이슈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는‘모든 개를 집안에 넣어라(すべての犬を家の中へしまえ)’라는 트윗이 10만 번 이상 리트윗됐다. ‘마치다’ ‘(물건을) 안에 넣다’라는 뜻의 동사(しまう)를 사용하면서 동물을 물건 취급했다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외에 사는 반려동물을 실내로 대피시키자는 내용을 강하게 표현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저마다 현관으로 대피시킨 개와 고양이 사진을 공유했다.
훈훈한 이야기임은 맞다. 하지만 반려동물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마당에서 키우는 개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2018년 기준 일본의 반려동물 산업 규모는 15조원을 넘어섰고 기르는 개와 고양이 수는 1,855만 마리에 달한다. 실제 도심지에 있는 펫숍에 가면 강아지들은 수백 만원부터 판매되는데 1,000만원을 호가하는 강아지도 ‘판매’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도심을 벗어난 지역에는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는 개들도 많다는 것이다. 실제 도쿄 내 유기동물보호소에 가보면 소형 품종견도 있지만 대체로 믹스에 중형견 이상이다. 지난 2017년 기준 보호소에 들어온 10만여마리의 개와 고양이 가운데 4만3,000여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런 점을 보면 일본이 일부 반려동물에게만 천국인 나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마당 개 사정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9월 태풍 ‘링링’이 강타했을 당시 태풍에 개집과 개가 날아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공유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 일부 동물단체에서 SNS를 통해 밖에 사는 동물들을 위한 지침을 공유했지만 아직까지 밖에 사는 동물들의 안전이나 복지를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지는 못한 것 같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511만 가구가 635만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는 지난 2017년 기준 2조3,3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대도시를 벗어나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짧은 줄에 묶인 채 살고 있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태풍뿐 아니라 더위나 추위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재해 발생 시에도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마당에 살아도 되는 개와 고양이, 실내에서 살아야 하는 개와 고양이는 따로 없다. 밖에 사는 동물들이 올 겨울 무사히 나길.
도쿄=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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