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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처럼…” 악동뮤지션 이찬혁이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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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처럼…” 악동뮤지션 이찬혁이 꾸는 꿈

입력
2019.10.18 04:40
수정
2019.10.19 19:4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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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 ‘물 만난 물고기’ 내… “해병대 ‘싸지방’이 작업실”

“군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서 시작”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 멤버인 이찬혁은 지인들에게 ‘4차원’으로 불린다. “적당히 외로운 시간을 위해” ‘혼밥’도 즐긴다.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낸 그는 요즘 그림 그리기에도 빠졌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 멤버인 이찬혁은 지인들에게 ‘4차원’으로 불린다. “적당히 외로운 시간을 위해” ‘혼밥’도 즐긴다.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낸 그는 요즘 그림 그리기에도 빠졌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작가님?” 지난 11일 오후 7시쯤 서울 홍익대 인근 공연장 하나투어 브이홀. ‘작가와의 대화’ 행사 사회자의 호명에 작가는 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무대에 올랐다.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드러낸 작가는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 멤버인 이찬혁(23). 그는 지난달 26일 소설 ‘물 만난 물고기’(다산북스)를 냈다. 발간 2주 만에 책은 2만부 넘게 팔렸다. 야구에 비유하면 적어도 2루타를 친 셈이다.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편안한 옷차림으로 무대에서 자유분방하게 노래했던 아이돌은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회색 정장 재킷까지 걸친 채 마이크를 잡았다.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를 줄여 부르는 인터넷 용어)의 마음으로 왔어요.” 200여 명이 모인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낸 이찬혁(오른쪽)이 지난 11일 서울 홍익대 인근 하나투어 브이홀에서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다산북스 제공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낸 이찬혁(오른쪽)이 지난 11일 서울 홍익대 인근 하나투어 브이홀에서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다산북스 제공

◇중1때 몽골서 방학숙제로 쓴 단편 ‘컬러스’

다리 꼬고 앉는 사람들 풍경에서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끌어낸 ‘다리 꼬지마’(2012)부터 세상을 차가운 얼음에 비유한 ‘얼음들’(2014)까지. 이찬혁은 친숙한 주변을 낯설게 보는 재치 있는 노랫말로 주목받은,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젊은 이야기꾼이다. 그의 톡톡 튀는 상상력과 샘솟는 창작열은 병역도 막을 수 없었다. 2017년 해병대에 입대한 이찬혁은 부대에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소등 이후인 오후 10시~12시, 남들이 자는 시간을 주로 이용했다. “‘싸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이 그의 작업실이었다. 이찬혁이 ‘작가와의 대화’ 직전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위해 만나 들려준 얘기다.

이찬혁은 글을 쓰는 게 영 낯설지만은 않았다. 몽골에서 보낸 중1때 50~60쪽 분량의 ‘단편’을 썼다. 방학숙제였다. 이찬혁은 본보와 인터뷰에서 “제목은 ‘컬러스’였다. 무지개의 색깔별 층에 사는 요정들 이야기”라고 말하며 웃었다. 출판사에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쓴 글을 엮어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책을 선물했다. 옛 경험을 떠올리며 이찬혁이 쓴 소설의 화두는 예술가의 자아 찾기다. “군대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떤 게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일까를 생각했고, 음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술가 이야기로 연결이 됐죠.”

◇”말 지키는 사람 됐으면” 아이돌의 바람

이찬혁의 삶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은 책 속 여러 인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인 선이가 배에서 우연히 만난 해야는 ‘얼룩말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소원’이다. 야생성이 강한 얼룩말은 길들지 않는 자유의 상징이다. 정해진 신호에 따라 통제가 이뤄지는 횡단보도에서 자유를 꿈꾸는 모순이 빚어내는 창작의 울림은 깊다. 해야는 이찬혁이 꿈꾸는 미래고, 선이는 그의 과거다. 선이는 앨범 발매를 앞두고 돌연 작업을 중단하고 1년간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추구하던 예술가로서의 삶이 아니라는 회의에서다.

선이는 여행 도중 서커스 단원, 호텔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을 만난다. 눈에 띄는 에피소드는 환경미화원과의 만남이다. 이찬혁은 책에 이렇게 썼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남편을 향한 분노 따위를 집 앞에 (쓰레기로) 버리고 가요. 나는 그들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을 주워 담습니다. 그럼 그들은 그 길을 지나면서 다시 같은 감정을 떠올리지 않게 되지요. 다시 예전같이 남편을 사랑해주는 거예요’. 이찬혁은 환경미화원 같은 음악인을 꿈꿨다. “생명력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힐링을 넘어서요. 누군가의 죽은 감정을 잊게 해주거나 죽은 감정을 살려 희망을 주는 소설 속 환경미화원처럼요.” ‘물 만난 물고기’는 이찬혁이 동생인 이수현과 최근 낸 새 앨범 ‘항해’와 세계관을 같이 한다. 이 앨범에 실린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지난달 25일 공개돼 17일까지 23일째 음원 사이트 멜론 등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찬혁은 2014년 악동뮤지션 1집 ‘플레이’를 내고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소년의 나이 열여덟 살 때였다. ‘동심의 아이콘’인 이찬혁은 노래처럼 살길 바란다. 그의 목표는 “말하는 것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제가 청취자분들에게 건네는 음악이 말이고, 그 말이 저 그리고 악동뮤지션과 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말을 지키는 게 곧 예술이라고 믿어요. 데뷔할 때 인터뷰에서 술을 안 마시겠다고 했죠. 지키고 싶어 한 말이기도 해요,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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