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산 핑크뮬리, 급속도로 번지며 위해성 조사 진행 
 환경부 “아직 교란 사례 없지만, 위해성 평가 서두르는 중” 
전남 장성군 황룡강변에 꾸며진 핑크뮬리 정원을 찾은 관광객이 16일 가을 정취를 즐기고 있다. 장성군은 가을꽃 축제인 노란꽃잔치가 열렸던 황룡강변에서 토요일 저녁 '달빛 치맥파티'를 여는 등 이달 20일까지 가을 나들이객 맞이 행사를 이어간다. 연합뉴스

맑고 높고 푸른 하늘, 분홍빛으로 흔들리는 갈대밭, 그 가운데 서 있는 내가 아는 사람. 가을이 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 번쯤은 본 사진 같아요. 그 분홍색 갈대같이 생긴 식물을 아시나요? 바로 ‘핑크뮬리’입니다. 바람이 불면 핑크뮬리가 단체로 살랑살랑 움직이는데, 이때 사진을 찍으면 마치 분홍색과 보라색을 섞은 수채화가 따로 없답니다. 특히 해질녘 분홍빛이 강해질 때 노을을 조명 삼아 ‘인생 사진’ 건지기 딱 좋지요. 핑크뮬리밭이 각 지역 가을꽃축제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른 비결입니다.

하지만 예쁘면 답니까? 아니죠. 환경부도 가만두고 볼 순 없었나 봅니다. 급속도로 너도나도 심어대는 핑크뮬리가 위해성 평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환경부는 올해 초부터 이 핑크뮬리가 다른 식물들, 특히 토종식물을 위협하지는 않는지, 위해성 여부를 정밀 검사 중입니다. 연말까지 검사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는데요. SNS 신인 스타에서 천덕꾸러기 의혹까지, 핑크뮬리의 한국 적응기를 살펴봤습니다.

 ◇제주도가 발굴해낸 식물계의 ‘슈퍼스타’ 핑크뮬리 
6일 오전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13도로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서양 억새의 일종인 핑크뮬리가 피어있는 서울 서초구 잠원한강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왕태석 기자

핑크뮬리가 SNS 사진 성지가 된 계기는 제주도의 한 생태공원의 전략 덕분이었습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 중서부가 고향인 핑크뮬리에게 “웰컴 투 코리아”, 한국으로 부른 거죠. 제주 생태공원에서 인기를 끈다는 소식에 이번엔 전국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퍼진 핑크뮬리밭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지자체 공공기관 주도로 핑크뮬리를 심은 규모는 11만 2,000여㎡쯤으로 추정됩니다. 축구장을 약 16개쯤 합쳐놓은 것과 비슷한 규모인데요. 개인이 직접 수입해 심은 것까지 합치면 핑크뮬리밭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 거죠.

 ◇핑크뮬리, 예쁘다고 마구 심으면 안 되는 이유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수피아' 핑크뮬리밭의 지난 6일 모습. 연합뉴스

핑크뮬리의 본명은 핑크뮬리 그라스, 우리말로는 분홍쥐꼬리새인데요. 외떡잎식물 벼목 볏과 식물로 외래종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핑크뮬리의 특징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번식력입니다. 가물거나 습하거나 덥거나 추워도 핑크뮬리는 살아남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극한 날씨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인 거죠.

핑크뮬리의 이 번식력과 생존력이 한국 토종 식물을 위협하진 않을까요? 전문가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김도순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당장 보기 좋다고 지자체가 나서서 우후죽순으로 들여온 핑크뮬리가 한국 자생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핑크뮬리밭을 가보면 잡초를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김 교수는 “월동이 가능하고 종자 생산이 많은 핑크뮬리 특성상,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제거하기 굉장히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지금이야 단지화로 관리를 해서 예쁘게 볼 수 있다고 해도, 만약 도로나 강가 등 사방팔방으로 퍼지게 되면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핑크뮬리의 거침없는 번식력, 이를 지켜보는 전문가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셈입니다. 김 교수는 “만약 수입 단계에서부터 생태적 특성을 기반으로 위해성 평가를 서면으로라도, 한시적으로라도 지켜보는 작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뒤늦게 생태계 교란 또는 위협종으로 지정이 되더라도, 이를 제거하기까지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환경부 “올 초부터 위해성 평가 검토” 
6일 오전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13도로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서양 억새의 일종인 핑크뮬리가 피어있는 서울 서초구 잠원한강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왕태석 기자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생물다양성법(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외래생물이 한국에 유입될 때는 수입 단계에서 위해성 평가를 실시해 △생태계 교란 생물 △생태계 위해 우려 생물 △관리 비대상 등으로 분류하기로 했는데요. 핑크뮬리는 이미 올해 초부터 환경부의 위해성 검토 대상으로 선정돼 올 연말까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는 연말쯤 나올 전망인데요. 환경부 관계자는 “핑크뮬리가 해외 생태계를 교란한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가 없고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멸종 위기 보호종으로 분류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무해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 교란 가능성을 조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될 경우 수입, 사육 재배, 유통이 아예 금지됩니다. 생태계 위해 우려 생물이 되면 상업적 목적으로는 허가를 받을 수 있지만, 유기 등 생태계 유출 행위는 금지된다고 하네요.

문제는 핑크뮬리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입니다. 생태계 교란이나 위해 가능성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만일 위해성이 확인된다면 이를 바로잡기 쉽지 않다는 얘기인 거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김 교수는 “한국 토종 자생종도 아름다운데, 이를 먼저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꼬집었습니다. 김 교수 설명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조경용으로 식물을 재배하더라도 자생종을 우선으로 연구해 식재하고, 외래종을 도입할 경우 재배 규모를 제한한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특히 볏과 식물인 핑크뮬리는 바람에도 종자가 멀리 퍼질 수 있는 등 생명력이 뛰어나 밭에서 하천 등 일반 생태계로 퍼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런 검토 과정 없이 유입된 점이 아쉽다”고 꼬집었습니다. “외래종은 유입할 때 하더라도 더욱 신중하게, 보수적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8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에서 방문객들이 활짝 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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