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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한 외교관 ‘동성배우자’ 지위 인정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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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한 외교관 ‘동성배우자’ 지위 인정한 청와대

입력
2019.10.21 04:40
수정
2019.10.21 09:1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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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 배우자로 공식행사 초청키로 

 터너 뉴질랜드 대사 부부 첫 수혜… 녹지원 리셉션서 文대통령 부부 만나 

 靑 “외교관 면책특권 따른 조치” 신중… “동성혼 인정 세계적 추세 반영” 해석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필립 터너 주한뉴질랜드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 내외와 인사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13년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필립 터너 주한뉴질랜드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 내외와 인사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13년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부터 한국 주재 외국 외교관의 동성(同性) 배우자를 ‘합법적 배우자’로 인정하기로 하고, 관련 방침을 바꾼 사실이 20일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는 ‘본국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부임한 외국 공관원의 배우자’라고 대상을 한정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동성혼을 인정한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일이다. 국내법은 동성혼을 금지하고 있다.

청와대 녹지원에서 18일 열린 주한외교단 리셉션 행사에선 이례적 장면이 연출됐다.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인 필립 터너 주한뉴질랜드 대사와 그의 ‘남편’인 이케다 히로시씨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반갑게 인사했다. 청와대가 주한외교단 행사에 동성 부부를 공식 초청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는 올해 들어 주한 외국 공관원의 동성 배우자를 법적 배우자로 인정해 공식 외교행사에 초청하기로 했다. 지난해 3월 부임한 터너 대사 부부가 첫 번째 수혜자가 됐다. 현재로선 유일한 수혜자이기도 하다. 다만 정부는 이처럼 방침을 바꾼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주재 외국 공관원 등을 위한 신분증 발급과 관리에 관한 규칙’은 ‘주한공관원의 동반 가족으로 인정받으려면 법적 혼인관계의 배우자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률에 위배되거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에는 배우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국내법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만큼, 정부는 본국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한 경우에도 공관원 동성 배우자의 공식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반 가족 비자도 내 주지 않았다.

과거 공관원 동성 배우자들이 가족 비자 발급을 요청한 사례가 일부 있었지만, 관계 부처들의 반대로 발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부임한 패트릭 리네한 전 주한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은 ‘동성혼 반대 국가에서 동성 부부라고 커밍아웃한 최초의 미국 외교관’으로 주목 받았는데, 당시 그의 동성 배우자는 한국에서 외교관 가족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필립 터너 주한뉴질랜드 대사 남편인 이케다 히로시씨는 18일 페이스북에 한국 정부가 주한 외교관의 동성혼을 인정한 후 처음으로 청와대에 공식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페이스북 캡처
필립 터너 주한뉴질랜드 대사 남편인 이케다 히로시씨는 18일 페이스북에 한국 정부가 주한 외교관의 동성혼을 인정한 후 처음으로 청와대에 공식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페이스북 캡처

외교부 관계자는 관련 방침을 바꾼 배경에 대해 “상대국에서 적법하게 성립한 결혼을 한국에서도 행정적ㆍ법적으로 인정한다는 차원으로, 상대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 국적 외교관이 해외로 나갈 경우엔 사정이 달라진다. 한국 정부가 국내법에 따라 동성 배우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주재국에서 외교관 가족 지위를 인정 받거나 외교관 가족 비자를 받을 수 없다.

동성혼 찬성자들은 문 대통령이 터너 대사와 함께 찍은 사진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지만, 청와대는 종교계와 보수진영 등의 반발을 우려한 듯 이번 사례가 부각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외교관의 면책 특권에 따라 동성혼을 인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외교관에게 적용한 이례적 조치’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혼을 합법화 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정부가 국내 거주자의 동성혼을 인정한 사례가 나온 것 자체에 상당한 의미가 실려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동성혼 인정이 세계적 추세이고 한국도 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며 “국내에서도 동성혼 도입을 위한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1년 네덜란드가 동성혼을 합법화한 이래로 2019년 현재 독일 영국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대만 등 26개국에서 동성혼이 합법이다.

주북한뉴질랜드 대사를 겸하고 있는 터너 대사와 이케다씨는 25년째 함께 살고 있으며, 뉴질랜드가 2013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이후 결혼했다. 터너 대사는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 남편 히로시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을 뵙게 되어 커다란 영광이었다”며 “문 대통령님 덕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새로 부임한 주한 외국 대사들은 청와대에서 열리는 신임장 제정식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해 대통령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것이 외교 관례이지만, 터너 대사는 지난해 7월 혼자 참석했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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