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열린 한중 국방전략대화]
국방부 “재난 구호 협정 체결” 발표했다가 기자 지적받고서 “‘협력’인데 오기”
中당국 “전담부처 따로 있다” 면박… 외교 성과 포장하려다 망신만 당해
주중대사관 무관 수개월째 공석, 현장 가교 역할도 삐걱대며 혼선
정부가 5년 만에 중국과 국방전략대화를 재개했지만 허술한 대중 외교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비판을 받고 있다. 안이한 상황 판단으로 회담 결과를 입맛에 맞게 뒤집는가 하면, 부처간 협업이 실종돼 중국 정부조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회담에 나섰다가 중국으로부터 빈축을 샀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이후 중국은 일관되게 공세를 펴는데도 우리는 허둥대면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와 주중한국대사관은 2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박재민 차관과 샤오위안밍(邵元明) 중국 연합참모부 부참모장(중장)간 전략대화가 끝나자 회담 결과를 담은 A4용지 두 장짜리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통상적인 관계 증진 외에 구체적 성과로 국방부는 ‘재난구호협정 체결을 추진한다’고 적시했다. 2012년 양국은 ‘재난구호 교류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려다 막판 무산된 전례가 있다. MOU보다 구속력이 강한 협정을 맺는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다.
특히 사드 배치로 악화된 한중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정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과거 한중 국방당국간 군수협력회의에서 MOU를 다뤘던 만큼, 양국이 재난구호협정을 체결한다면 향후 군수지원협정(MLSA)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내달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 중국과 새로운 군사협정 체결에 나선다면 동북아 안보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협정을 놓고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2시간여 지나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그러면서 ‘재난구호협정 체결 추진’을 ‘재난구호협력 추진’으로 고쳤다. 원래 ‘협력’인데 ‘협정’으로 잘못 표기했다는 군색한 해명을 덧붙였다. 국방부에서 작성해 이미 수 차례 내부 확인을 거쳤을 내용이 슬그머니 바뀐 것이다. 실제로 오자라면 기강해이고, 아니라면 꼼수를 부린 셈이다.
더구나 ‘재난구호’는 이번 회담에서 거론하기에 적절치 않은 상황이었다. 중국은 지난해 3월 응급관리부를 신설해 재난구호를 맡고 있다. 한국의 카운터파트는 국방부가 아니라 행정안전부다. 이에 중국 측은 “재난구호는 전담부처가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사실상 훈계나 마찬가지다.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외교의 최전선에서 정보부족이 초래한 낯뜨거운 장면이다. 국방부가 다른 부처와 긴밀히 협조하지 않은 채 성과를 부풀리는데 주력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주무부처인 행안부는 회담 결과에 재난구호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외교 현장의 가교 역할이 삐걱대면서 국방부가 혼선을 빚은 탓도 있다. 주중대사관 무관(준장)은 지난 6월 불미스러운 일로 보직해임 돼 수개월째 공석이고, 무관대리(대령)도 국내에서 교육을 받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외교부 소속 주중대사관은 국방당국간 회담에 가급적 관여하지 않는 실정이다. 국방부는 보도자료 말미에 “중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정작 내부 소통은 단절된 셈이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