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 결합, 전국 7200여곳 도입
“청년주거난 해소 위해 정부 지원, 법 제도 보완” 목소리 나와
학교 기숙사에 머물던 대학생 허모(24)씨는 집안 사정으로 작년에 휴학을 결심했다. 학교 내규상 휴학생은 기숙사에 계속 머물기 어려웠기 때문에 허씨는 다른 방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학교 주변에서 자취방을 구하기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허씨는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청년 셰어하우스'를 알게 됐다. 한 사회적 기업이 학교 주변에서 청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주거시설이었다.
셰어하우스는 침실을 비롯한 개인 공간과 거실, 주방, 세탁실과 같은 공유 공간이 결합된 주거 형태다. 특별한 법적 관계가 없는 개별 가구들이 출입문이 하나인 가구를 공유한다. 얼핏 들으면 고시원을 떠올리기 쉽지만 룸메이트들 사이에 긴밀한 교류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계가 단절된 고시원과는 다르다. 2013년부터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셰어하우스는 2013년 130여 곳에 불과했지만 2019년 현재 전국 7,200여 곳에 달한다.
허씨는 저렴한 가격을 셰어하우스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보증금으로 몇 천 만원, 월세로 수 십 만원은 우습게 넘기는 대학가 주변 시세에 비해 셰어하우스 집값은 저렴했다. 보증금은 80만원이면 충분했고 월세도 공과금을 포함해 30만원 수준이었다.
타인의 개인 공간을 침해하지 않도록 입주자들끼리 자발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준수하고 공유시설은 함께 사용했다. 음식을 시켜 먹거나 과제를 할 때 주로 공유시설을 사용하는 식이었다. 인덕션, 세탁기 등 기본적으로 구비된 시설을 함께 사용하되 본인이 사용할 생필품은 각자 마련해야 한다. 불편 사항이 있다면 '헬퍼'(함께 사는 입주자들을 대표해 회사와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입주자)를 통해 회사에 전하면 된다. 허씨는 "이곳 저곳에 살아봤지만 셰어하우스는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깨끗해 가장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셰어하우스 등장과 함께 많은 청년 창업가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 순탄치만은 않다. 한국일보 영매거진은 청년 창업가들과 함께 셰어하우스가 청년 주거의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잡기 위해 해결돼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공익적 성격 셰어하우스는 정부 지원 필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2012년부터 ‘청년전용창업지원자금’을 통해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하거나 이자를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최근 ‘청년 셰어하우스’를 창업하려 했던 박모(29)씨도 이 정책의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셰어하우스는 주거공간을 임대해주고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융자제한업종’ 중 하나인 부동산 임대업에 포함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셰어하우스를 청년창업지원 명목으로 돕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모든 셰어하우스가 공익적 성격을 갖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원 연구원은 “모든 셰어하우스가 공공성을 보인다거나 그 자체로 특출난 신산업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셰어하우스란) 업종 자체를 지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최규현 셰어하우스 봄날 대표도 “수익 창출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셰어하우스 창업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라며 “이런 시설들의 경우 주거 환경도 좋지 않고 비싸서 공실률이 높은 편”이라 말했다.
이에 대해 이한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공익적 목적의 셰어하우스에 한해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이사장은 셰어하우스의 공익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시했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된 해당 조례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약자의 주거 개선’을 위한 사회주택의 요건으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 공급 △임대료 통제 △공동사업 추진 등을 정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 조례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한 공익적 셰어하우스에 한해 기존 부동산 임대업과 분리해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택공기업 협업과 지방채 발행도 현실적 대안
서울도시주택공사(SH) 등 주택 공기업과의 협업도 청년 셰어하우스 활성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한솔 이사장은 일단 빈집을 활용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건물과 토지 모두를 입주자에게 분양하는 기존 분양주택들과는 달리, 토지임대부 주택은 시행사가 입주자에게 건물만 분양하고 토지는 임대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서울시와 SH는 지난 8월 ‘빈집 활용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 참여할 1차 사업자를 공모해 선정한 바 있다. 서울시가 정릉동, 동소문동 7가, 연희동, 부암동 일대 장기간 방치된 빈 집을 매입, 셰어하우스와 같은 사회주택으로 개조해 이를 민간 사업자들에게 위탁해 운영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이 이사장은 “SH가 매입해 리모델링하기 때문에 창업자 입장에선 초기자금이 많이 필요하진 않다”며 “(창업자는) 실무적인 운영에만 집중하면 돼서 입주하는 청년들에게 더 깔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공기업과의 협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영세 청년 창업자들에겐 지방채 발행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주무열 관악구의회 의원은 “각 지자체에서 구 금고(관악구의 경우 7,000억~8,000억원 규모)의 신용을 이용해 시중 은행들로부터 돈을 빌려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셰어하우스를 선별해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 의원은 “지자체들은 시중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자가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며 “서울시는 지방채를 발행해 2019년 예산안에서 청년매입임대 1,700가구 공급에 1,898억원을 책정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가구 형태 인정 법적 지원 필요
현행 주택법 상 셰어하우스는 하나의 독립적인 주택 유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주택법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주택은 건축물의 목적, 면적, 구성원 등과 같은 기준에 따라 단독주택, 다중주택, 공동주택 등으로 분류된다. 청년들이 주로 찾는 셰어하우스는 학생 또는 직장인 등 다수인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독립된 주거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중주택에 속한다. 고시원이 대표적인 다중주택이다.
하지만 고시원과는 다르게 셰어하우스는 대다수에게 ‘낯선’ 주거형태일 수밖에 없어 입주자들은 행정적인 불편함을 겪는다. 이성영 희년함께 학술팀장은 “(셰어하우스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세대주, 세대원 등록 등 행정적인 절차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한솔 이사장도 “셰어하우스의 애매한 법적 지위 탓에 (주민센터로부터) 확정일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 등에서 행정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주택법을 일부 개정해 셰어하우스를 공유주택으로 지정하고 단독주택, 공동주택 등과 함께 하나의 독립적인 주택 유형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단순한 법률 개정만으론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이사장은 “원칙적으론 (법 개정에) 동의하나 그것만 갖고는 부족하다”며 “단순히 주거 형태를 법으로 정하는 것을 넘어 셰어하우스의 소프트웨어적 특성을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성원들이 서로 가족이나 부부가 아니더라도 하나의 주택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의 가구적 특성을 인정하고 다른 가구형태들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액 대출로 입주 희망 청년 지원한다면…
청년들은 입주에 필요한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몇 십 만원에서 몇 백 만원 단위의 소액 대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일반 원룸이나 고시원이 아닌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길 희망하는 학생들은 빚을 지고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최규현 대표는 “보증금 마련을 목적으로 한 소액 대출의 경우 임대차 계약을 대상으로 하는 게 원칙”이라며 “대부분의 셰어하우스는 전대차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셰어하우스 입주를 바라는 학생들은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셰어하우스들은 사업자가 건물주로부터 주거 공간을 임대 받은 뒤, 이를 다시 세입자에게 대여하는 전대차 방식이 많다.
“보증금 마련이 어려운 건 큰 문제”라는 이한솔 이사장은 셰어하우스 입주를 희망하는 청년들의 보증금 마련을 돕기 위해 시중 은행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마련한 금융 상품도 소개했다. 2016년부터 동작신협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청년사회주택대출상품’을 직접 출시했다. 셰어하우스 입주를 원하지만 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보증금의 80%까지 최대 1,000만원을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이 이사장은 “사회적 금융이라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보완책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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