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스타인 이승기는 스턴트맨 차달건으로, 수지는 국정원 요원 고해리로 나와 파격 변신을 했다. 시청률 40%에 육박했던 화제의 드라마 ‘자이언트’(2010)를 만든 유인식 PD와 장영철ㆍ정경순 부부 작가가 다시 힘을 모아 작품의 뼈대를 세웠다.
드라마 ‘배가본드’는 올해 SBS판 ‘아스달 연대기’로 통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이 화려했고, 여느 드라마 제작비의 3배를 웃도는 2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돼서다.
기대와 달리 지난달 첫 방송된 ‘배가본드’는 아쉬움이 컸다. 모로코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드라마는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성로비와 접대 장면은 지나치게 선정적이었고, 진실을 쫓는 피해자의 몸부림이 사적 복수처럼 그려졌다. 지상파 드라마 중에선 이례적으로 유사 중간광고인 ‘프리미엄 광고(PCM)’를 매번 두 번이나 넣어 입길에 올랐다. 방송사와 제작진의 과한 욕심 때문에 여객기 추락 사고를 배경으로 방산 비리를 파헤쳐보겠다는 야심 찬 실험은 빛을 바랬다.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배가본드’를 돋보기 삼아 드라마 시장의 위기, 지상파 대작 드라마의 한계와 숙제를 들여다 봤다.
양승준 기자(양)= “한복을 입은 접대부가 옷고름을 풀고 정부 고위 권력자들을 접대한다. ‘배가본드’는 15세 이상 시청가다. 일부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여성에 한복을 입혀 접대를 하는 모습이 시대착오적으로 비쳤다. 청불 영화 ‘내부자들’(2015)을 보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불편했다. 무기 중개상(문정희)이 국방부 장관(최광일)에 성 로비를 하는 과정도 여과 없이 나온다. 대통령(백윤식)이 전신 탈의를 한 채 침대에 누워있고, 그의 등 위에서 여성 안마사가 안마를 하는 장면은 황당하더라.”
강진구 기자(강)= “대통령이 여객기 추락 사고 유족들을 만나기 전 화장을 받는 모습이 나온다. 유족들이 진상 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도 요구한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부의 무능함 등 옛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데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의 비극이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도구처럼 쓰였다고 할까. 유 PD가 현실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찍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제작진의 성찰 담긴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김표향 기자(김)= “진실을 향한 차달건의 추적이 사적 복수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과잉 연출 탓이 아닐까 싶다. 공권력이 해결해주지 못한 일을 유족이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참혹한 이야기인데, 비리로 얼룩진 청와대 등 권력의 부조리를 시원하게 환기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지금 좀 생뚱 맞아 보이기도 한다. ‘조국 사태’로 현실이 너무 어수선한 탓도 있겠지만.”
양= “‘배가본드’는 애초 5월 편성으로 논의됐다. 헌데 투자사인 넷플릭스 공개 일정 등의 이유로 9월로 방송이 미뤄졌다는 소문이 방송가에 파다했다. 제작 규모가 크다 보니 드라마 수출 등 해외 판로 마련이 중요했을 테고, 이런 산업적 배경이 이승기, 수지란 청춘스타 캐스팅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지만 드라마가 첩보물인 만큼 좀 더 무게 있고 연차 있는 배우로 힘을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 두 배우는 드라마에 살짝 떠 있는 느낌이다.”
강= “방송 산업 환경 변화의 여파가 ‘배가본드’에선 부정적으로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하루 70여 분 방송을 3부로 쪼개 시청 흐름이 뚝 끊기더라. 지난 4월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120분)의 PCM 2회 삽입 후에도 말이 많았는데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의 유사 중간광고 도입 후 큰 제재 없이 묵과하면서 방송사의 PCM 활용이 더 과감해지고 있다.”
김= “방통위가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의에 대한 결론을 하루빨리 내려야 한다. 지상파에서 중간광고가 불법인데 PCM이 나오고, 이젠 방송사의 사전 고지 없이 두 번이나 봐야 하니 반감만 커진다. 시청자 입장에선 무방비로 당하기만 하는 느낌이니까. 개인적으론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종편)채널에 대한 역차별 해소 차원에서 지상파도 중간광고를 도입해야 한다고 보지만.”
양= “드라마 제작비 폭증과 OTT 등 다매체 환경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로 지상파 3사가 평일 미니시리즈 제작 편수를 부쩍 줄이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 차원에서 나온 게 ‘배가본드’라 할 수 있다. 대작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한 것이다.”
강= “KBS와 MBC는 올해 900억~1,000억원 규모의 적자가 예상된다. 지상파를 비롯해 케이블, 종편까지 비슷한 시간에 4~5편의 드라마가 방송된다. 제작 편수가 너무 많다. 지상파가 드라마 제작 편수 줄이는 건 맞는 방향이라 본다. 다만, 대작화만이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상파가 채널의 특수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청률 15%대로 화제인 ‘동백꽃 필 무렵’은 KBS라서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이게 지상파의 바람직한 미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양승준ㆍ김표향ㆍ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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