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저는 스물여섯의 미혼인 회사원이에요.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만 정작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너무 어려워요. 친구를 만나도 어딘가 헛헛한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제 스스로가 위선적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감정적 교류에서 어딘가 유리천장이 있는 것처럼 한계가 느껴져요. 제가 민감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실은 제 감정이 진실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두려워요. 저는 연애 경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본 일도 없어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거나 좌지우지하는 그런 감정들을 가진다는 게 정말 일반적인 일인가요. 저는 제 자신을 그렇게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타인보다 뒤처지고, 무능하고, 제 감정의 민낯 같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이 싸웠어요. 엄마는 성격이 불 같고, 아빠는 능글맞은 성격이었어요. 아빠는 평소엔 괜찮다가도 다혈질이어서 화를 못 참았어요. 그럴 땐 엄마를 때리기도 했어요. 두 분이 싸우는 일이 잦아 나중에는 말리지도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곤 했어요. 어차피 제가 나서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정말 헤어질 듯 싸우다가도 또 잘 지내곤 했으니깐요. 저는 남동생이 둘 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가 태어나면서 집안의 불화가 시작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할머니는 아들을 못 낳는다고 엄마를 구박했어요. 첫애로 딸이 들어선 데 대해 항상 못마땅해했어요. 다행히 밑으로 바로 남동생이 생겼고, 하나로는 모자랐는지 아들을 하나 더 보자고 해서 엄마는 막냇동생까지 낳았어요. 저는 이런 가족 분위기 때문에 귀가 따갑도록 ‘누나가’ ‘여자가’라는 말을 들었고, 그런 말이 가장 듣기 싫었어요.
아빠는 취직했다가도 곧 관뒀어요. 무능했지요. 엄마는 막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어렸을 때는 사고 싶은 게 있어 조르면 엄마는 절대로 안 사줬고, 아빠는 무능했지만 사주곤 했어요. 나중에는 엄마한테는 아예 뭘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동생 둘을 제가 돌봐야 했고, 형편이 좋지 않아 저희들끼리 집 안에 있곤 했어요. 당시에 저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건 아닐까 겁이 나곤 했어요. 엄마가 낮잠을 잘 때는 가슴팍에 가만히 귀를 대보곤 했어요.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됐어요. 또 엄마의 속옷 끈을 꼭 매만지면서 자는 습관도 있었어요. 끈을 만지면서 아기가 젖을 빨듯이 혀를 차는 습관도 있었어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저는 여자가 남자보다 뒤처지는 일이 싫었고, 무능한 사람이 되기는 더 싫었어요. 남자한테 의존할 게 아니라 혼자 자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무시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공부하는 게 적성에도 맞고, 성적도 좋았어요. 그래야 내 스스로의 몫이라도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능한 제 자신을 상상하기는 죽기보다 싫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즐거운 것들을 모두 미룬 채 조용히 10대를 보냈어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도 있지만, 여전히 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없어요. 저를 유능한 사람처럼 포장해야 마음이 놓여요. 그래야 다른 사람과 안전한 거리도 유지할 수 있고요. 그런 제 자신이 가끔은 위선적으로 느껴져서 괴롭기도 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강민아(가명ㆍ26세ㆍ회사원)
민아씨, 당신의 사연을 읽으면서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부모가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를 깊이 생각해봤어요. 부모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어떤 인생을 살면 좋을까를 고민해야 해요.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독립적인 존재로서 건강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 몫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식을 사랑하는 우리 주변의 많은 부모가 키를 더 키우고 무엇을 잘하게 하고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을 자녀를 키우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성실하고 유능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을 만큼 똑똑한 사람 같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오랜만이네요. 더 예뻐졌네요”라고 하면 보통은 “감사합니다”라고 해요. 그런데 당신은 속으로는 ‘저 사람은 왜 나한테 그렇게 예뻐졌다고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누군가 당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면 당신은 ‘저 사람의 마음이 진심일까, 가식 아닐까’라고 믿지 못해요. 매사가 불안하지요. 어떤 병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이나 특정 사안에 대해 걱정을 하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는 불안감이 당신을 휘감고 있어요. 이 불안감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기 확신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친하진 않지만 얼굴 정도는 알고 지내는 여러 명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요. 그런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보통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옆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를 먼저 건네거나 안부를 묻겠지만, 당신은 그들이 왜 당신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는지 불안하고, 그 자리가 이내 불편할 거예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대했던 자신이 가식적인 것 같고 위선적이라고 느껴지고 스스로 괴로워하지요. 그런 불안과 괴로움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부족해서 오는 거예요.
당신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는 이유는 유년 시절과 밀접한 영향이 있어요.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창이 만들어져요. 어린아이들은 흔히 ‘우리 부모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러니깐 다른 사람들도 나를 좀 좋아해 줄 거야’ ‘우리 부모와 같이 있을 때 내가 안심되고, 편안하듯이, 바깥세상도 그럴 거야’ ‘우리 부모와 같이 있을 때 즐거운 것처럼 세상의 다른 사람과 있을 때도 즐거울 거야’ ‘우리 부모는 믿을 만해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세상도 믿을 만할 거야’라고 인지하고, 느끼게 됩니다. 부모와의 창을 통해 세상도 바라보지만,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도 생겨요. 이 과정에서 안정감과 자기 신뢰가 쌓이지요.
원만한 대인관계 능력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재미있고 좋았다는 경험 속에서 자라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반가우려면 출생 후 처음 만난 다른 사람인 엄마가 반갑고 좋아야 합니다. 엄마에게 정당하게 요구했더니 엄마가 들어주고 힘든 것을 같이 의논하고 해결해 준 경험, 엄마가 사정에 의해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섭섭한 마음을 위로 받고 마음이 다시 좋아지고 힘을 얻었던 경험을 하면서 원만한 대인관계 능력이 생겨나지요.
그런데 민아씨는 그런 게 부족했어요. 당신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것도 아니고,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의 표현대로 무능하지만, 다소 느물거리는 성격이었을 거예요. 아내의 약을 올리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거예요. 이 같은 태도는 상대를 인정해주지 않는 거예요. 엄마는 뻔뻔하다고 느끼고 질색했을 거고, 바득바득 달려들어 싸웠을 거예요. 두 분이 성격이 잘 안 맞아 다퉜지만, 자식을 학대하거나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생계로 바쁜 엄마와 무능한 아빠는 당신을 세심하게 돌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가 잠을 자는데도 혹시나 죽을까 심장 소리를 들어야 안심하고, 엄마 속옷 끈이라도 잡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어렸을 때 당신이 느꼈던 불안감을 보여주는 거예요.
부모들은 언제나 자식에게 온 신경을 쏟고 있어요. 24시간 보고 있지 않아도,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지요. 따로 떨어져 있어도 늘 머릿속은 자식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에요. 민아씨의 부모도 그랬겠지만 표현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어린 당신이 언제나 엄마를 향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엄마를 살폈어요. 엄마가 어디를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할지, 엄마가 왜 누워 있는지 끊임없이 엄마를 생각했어요. 부모가 자식에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엄마가 당신에게 그렇게 해야 했는데, 민아씨의 집은 거꾸로였어요. 당신이 아이를 보살피듯 엄마에게 온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거지요.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자식을 인정하고, 공감해줘요. 자식이 뭘 생각하는지, 뭘 궁금해하는지 살피면서 자식에게 설명해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당연하다고 해주고, 동의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에요. 자식의 감정과 생각과 행위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격려해줘요. 자식이 화나는 일이 생기면 ‘네가 화나는 게 당연할 수 있지’ ‘네가 그렇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은 힘든 일이고, 네가 그렇게 대처하는 건 잘한 거야’라고 말해주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식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생겨요.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성장합니다.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런 경험이 너무나 부족했어요. 어린 당신의 행동과 감정을 부모가 인정해주고 동의해주고, 당연하다고 맞장구 쳐줘야 하는 과정이 쏙 빠져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과 느낌, 생각에 대한 자기확신이 떨어지고 불안이 엄습하면서 혼란을 느끼는 겁니다. 정답과 오답의 기준이 명확한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불안을 낮출 수 있었지만 감정은 온전한 기준이 없고 생각은 완벽한 정답이 없거든요. 인간관계는 의도와 느낌을 주고받는 관계이니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호한 불안은 자신의 주관과 인생의 기준, 자기 신뢰감으로 낮출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경험은 10대 시절 절친한 친구가 생기고, 이성을 사귀면서도 채워질 수 있어요. 아주 친한 친구와 감정을 나누고, 화를 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삐치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깊은 감정을 공유해요. 하지만 당신은 친구를 깊이 사귀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감정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언니나 오빠도 없었어요. 그런 경험이 부족해서 민아씨는 스스로와 타인의 감정과 의도가 명확하지 않을 때 혼란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누군가와 맞닥뜨렸다고 가정했을 때 ‘어머, 보고 싶었어요’라고 얘기하는 건 가식이고 위선이에요. 하지만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라고 인사를 하는 건 배려를 담은 친절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불안해해요.
집에서 ‘여자가’ ‘누나가’라는 말을 많이 들은 경험은 당신에게 ‘잘못된 당연함’을 심어줬을 거예요. 가령 다 큰 남동생이 사과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당신이 마침 (자신이 먹을) 사과를 깎고 있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당신은 다른 행동을 하는데 누군가 ‘누나가 동생이 먹을 사과를 깎아주는 게 당연하지’라고 하는 건 부당한 거예요.
민아씨,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똘똘했을 거예요. 투정이라도 부렸다면 엄마가 당신에게 신경을 더 썼을 텐데 당신은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투정을 부리거나 말썽을 피우지 않았어요. 엄마가 신경을 안 쓰도록 알아서 대처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대부분의 행동이 보편 타당한 상식선에서 이뤄질 거라고 믿어요. 당신이 타인에게 하는 행동과 말은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배려를 담은 친절일 거예요. 그 사실을 당신 스스로 확신을 가지는 게 필요해요.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중요한 단 한 가지 말은 이거예요. 당신이 행한 말과 생각과 감정의 표현과 행동은 대부분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당장 타인에게 다가가기가 힘들더라도, 적어도 당신이 타인에게 하는 행위나 감정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사람 대하기를 새롭게 시작해보기를 권합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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