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 1위 기업 SK텔레콤과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를 운영하는 카카오가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파격적인 동맹을 맺는다. 각자의 영역에서 1등인 기업들이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나타난 생존에 대한 위기감이 이례적인 ‘지분동맹’으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통신, 콘텐츠, 커머스 등으로 파편화돼 ‘승자독식’ 형태를 띠었던 기존 산업과 달리 융복합 시대인 4차 산업혁명 생태계에선 무한 경쟁이 불가피해 서로의 역량을 결집하는 ‘개방과 협력’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3,000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통해 통신ㆍ커머스ㆍ디지털 콘텐츠ㆍ미래 ICT 등 4대 분야에서 협력하겠다고 28일 발표했다. 주식 교환은 단순한 사업 협력을 뛰어넘는 결속력을 확보해 빠른 속도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유영상 SK텔레콤 사업부장과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시너지 협의체’ 대표 역할을 맡아 주요 의사결정을 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지배적 사업자이지만 비(非)통신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만났다. 카카오도 미디어(음원), 모빌리티(택시 호출), 인공지능(AI) 등 첨단 ICT 분야에서 SK텔레콤과 경쟁해왔다. 경쟁 관계인 이들은 국내 시장을 장악하려는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도 막아내야 했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톡(점유율 95%)만으로는 수익 창출과 경쟁력 강화에 한계가 있어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약할 필요가 있었다. 국내 기업간 출혈 경쟁에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동맹 효과가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분야로 디지털 콘텐츠와 커머스를 꼽는다. SK텔레콤은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웨이브’를 9월 출시하고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지만 콘텐츠 제작 능력이 부족하다. 카카오는 웹툰, 웹소설 6만여편 등 활용 가치가 높은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병헌, 공유 등이 소속된 기획사와 제작 역량을 입증 받은 영화사 등을 거느리고 있지만 콘텐츠를 유통할 통로가 부족하다. 두 회사의 동맹이 양측의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커머스 분야에선 카카오톡과 SK텔레콤 ‘11번가’와의 연계가 예상된다. 카카오톡 안에서 11번가 상품을 바로 구매하는 방식의 사업모델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e커머스 시장에서 모바일 커머스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모바일 기반으로 전환하는 데 양사가 11번가의 노하우와 카카오톡 플랫폼을 서로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카카오 영상, 음원, 게임 등을 이용할 때 데이터 이용료를 할인해주는 SK텔레콤 전용 요금제 출시 등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 기업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AI 관련 연구개발(R&D)에서도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각각 AI 플랫폼 ‘누구’와 ‘카카오아이’를 운영중이며, T맵(SK텔레콤), 카카오택시(카카오) 등 국내 대표 모빌리티 서비스를 갖고 있어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 양도 방대하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업부장은 “카카오와의 협력은 미래 ICT의 핵심이 될 5G, 모바일 플랫폼 분야의 대표 기업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 ICT 경쟁력을 강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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