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영화제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의 상영을 보류하자, 이에 항의하며 한 일본 영화사가 자사의 영화 출품을 취소했다. 지난 8월 국제예술제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가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한 뒤 불붙었던 ‘표현의 자유’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28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가와사키 신유리’(しんゆり) 영화제 사무국은 이 영화제에서 상영 예정이었던 주전장의 상영을 보류했다. 지난 4월 일본에서 개봉한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 은폐하려는 일본 자민당 의원과 극우 논객, 친일 미국인 등 다양한 우익 세력의 실체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영화 속에 극우 인사의 주장도 포함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소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접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연출했다. 그러나 개봉 직후 영화는 일본 내 극우세력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영화에 출연한 우익 논객들이 상영 중지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감독에 대한 고소 협박을 하는 등 반발이 이어졌다.
영화 상영 보류 결정이 알려지자 문화예술계에서는 영화제 측이 일본 정부의 의도에 ‘손타쿠’(忖度ㆍ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일본 영화사는 영화제 측의 결정에 항의해 자사 영화 출품을 취소하기도 했다.
2편의 작품이 이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던 '와카마쓰 프로덕션'은 전날인 27일 "영화제 측이 표현의 자유를 죽이는 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자사 작품의 출품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와카마쓰 프로덕션은 성명에서 "이번 문제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전시 중단, 문화청의 보조금 교부 철회 등 일련의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며 "이런 흐름이 예술가들의 자체 검열과 사전 검열로 이어져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전장의 배급사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8월 5일 영화 상영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같은 날 영화제 측으로부터 ‘가와사키시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어 지난달 문서로 상영 보류 결정을 통보 받았다. 영화제 사무국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안전과 운영의 면에서 위험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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