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新쪽방촌] <2> 고시촌, 쪽방촌 되다
보증금 없는 월세 26만원짜리 단칸방, 주방도 없고 열기ㆍ냉기 차단 못해
‘불법 쪼개기’ 원룸보다 조건 나빠… “주거의 질 급격한 추락” 쓴 맛
“저희 고시원의 가장 큰 문제는 냉ㆍ난방이에요. 에어컨은 제가 틀 수 없고, 사장님이 퇴근하면서 끄고 가거든요. 여름엔 에어컨을 밤 12시 반 정도까지 틀어 1시까지는 냉기가 유지되지만 이후엔 너무 더워 잠을 못 자요. 반대로 겨울엔 방에는 난방이 되지만 복도와 화장실은 난방이 되지 않아요. 벌써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너무 추워 이번 겨울도 큰일났구나 생각했어요.” 서울 관악구 서림동 4층짜리 고시원에서 1년 10개월째 살고 있는 서울대 4학년생 고근형(22)씨의 말이다. 서울이 관측사상 최고 온도인 39.6도를 기록한 지난해 여름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아예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열흘을 보낼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열대야에 에어컨 없고 주방도 없는 ‘잠만 자는 방’
2015년 대학 합격과 함께 서울로 온 고씨는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져 원룸에서 2년간 살았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가 40만원. 고향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월세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이후 휴학한 1년동안 일정한 주거지 없이 친구 집과 동아리 방을 전전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고시원도 살만하다”는 공시생 형의 말에 보증금 없이 월세 26만원인 지금의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그가 사는 고시원은 4개층마다 각 16개 호실과, 복도 끝에 좌변기 2개와 샤워실이 딸린 화장실이 있다. 수요가 넘쳐나 공실은 없다. 고씨는 “64명의 입주자들간에 세수 경쟁이 붙는 아침마다 빈 샤워실을 찾아 4개층을 오르내린다”고 했다.
고씨 방은 고시원 치고는 넓은 편인 3평(9.9㎡) 정도. 창문이 있지만 앞에 다른 건물이 있어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창문에는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설치돼 있지 않아 오히려 밤엔 옆 건물 조명 불빛이 방으로 들어와 수면을 방해한다.
고씨는 고시원에서 끼니를 해결한 적이 없다. 주방이 없어 아침은 거르고 점심ㆍ저녁은 바깥에서 먹는다. 입주자들이 계단마다 하나씩 있는 냉장고에 냉동식품 등을 넣어놓고 1층에 하나 있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곤 하지만 방마다 냄새가 진동하기 일쑤다. 고씨는 하나밖에 없는 고시원 세탁기를 사용하기 쉽지 않아 한 번에 6,000원 정도 주고 코인 빨래방을 이용한다. 이렇게 식비와 세탁비로 쓰는 돈은 최소 월 47만원 정도라고 했다.
원룸 시절에는 저녁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맥주 마시는 게 취미였지만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고시원에선 그마저도 할 수 없다. 그는 “인터넷이 안돼 숙제도 못하고 잠깐 카카오톡 메시지 확인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카페에서 보낸다.
고시원의 사회생활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시원 생활 2년동안 다른 입주자와 말을 섞은 것은 딱 한번. 계단과 화장실을 오갈 땐 현관 신발장에 넣어둔 슬리퍼를 신는데 실수로 다른 사람 슬리퍼를 신었다가 슬리퍼 주인인 중년 남성에게 혼이 났을 때다. 고씨는 “전반적으로 고시원 분위기가 팍팍하다”고 했다. 그가 사는 고시원에는 고씨와 같은 대학생 혹은 시험 준비생이 절반, 중장년층이 절반이다.
그는 “부모님은 고시원에 있을 거 다 있고, 화장실이나 샤워실 청소는 제가 안 해서 좋겠다고 이야기하신다”며 “굳이 열악한 상황을 설명해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 필요는 없어 부모님께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고시원 생활을 다룬 인기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가 자기 이야기처럼 공감됐다고 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수렁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주거비용을 생각하면 딱히 나은 곳으로 갈 수도 없어 취직하면 고시원을 나갈 생각이지만 취직을 하고도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웹툰의 주인공 처지가 자신의 얘기가 아닐까 두렵다는 것이다. 고씨는 “이런 집도 월 26만원인데 결코 저렴한 게 아니다”며 “청년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는 것인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라며 씁쓸해했다.
고씨가 사는 관악구에만 800개 안팎의 고시원이 영업을 하고 있고, 입주자 수 만 명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관악구는 서울 25개구 가운데 1인 청년가구 주거빈곤율(1인가구 최저주거기준 14㎡에 미달하는 주거 비율)이 42.7%로 가장 높았다. 공시생들의 터전인 노량진이 있는 동작구(30%)는 2위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시원·고시텔에 거주자는 15만여명으로 평균 연령은 34.6세다.
◇기울어진 침대에 잠 못 이뤄 수면유도제 처방까지
젊은 여성의 고시원 생활은 어떨까. 사회초년생으로 고시원 생활 3개월째인 이보라(가명·23)씨는 손가락에 잡힌 물집을 보여주면서 “며칠 전 갑자기 생겼다”며 “인터넷에 찾아보니 소화기능과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기는 것이라 나와있더라”고 했다.
이씨는 지난 7월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인턴으로 채용돼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1주일 내 급하게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고시원을 찾았다. 셰어하우스를 구하자니 보증금 50~100만원에 월세 50~60만원으로 인턴 월급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고향이 울산인 그가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며 원룸에서 자취를 한 후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 뒤 이씨는 “주거 질의 급격한 추락을 맛봤다”고 했다.
고시원만 모아놓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첫 번째로 찾은 서울 마포구 대흥동 근처 고시원. 회사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택한 첫 번째 고시원은 충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퍼져 나오는 음식 찌든 내가 진동했어요. 방도 침대 하나 들어갈 만큼 좁고, 공용화장실과 샤워실을 쓰는 곳인데 월세 25만원. 이런데 사느니 인턴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두 번째로 본 고시원은 방 안에 화장실만 있을 뿐 사정은 나을 것도 없는데 월세 48만원. 고시원 계단을 올라가는데 중년 남성이 계속 빤히 쳐다봤다. 남녀 공용이었다. 이씨는 “방 값도 비쌌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결국 그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35만원인 여성전용고시원에 짐을 풀었다. 여성 총무인 점도 안심이 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산 지 3개월만에 보라씨는 건강이 악화됐다. 가장 큰 문제는 침대였다. 크기가 자신의 키보다 작아 누우면 발이 바깥으로 나왔다. 더욱이 침대는 기울어져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이씨는 “3개월 내내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소화도 잘 안된다”며 “얼마 전엔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수면유도제까지 받아와 간신히 자기도 했다”고 말했다.
침대 바로 옆에 붙은 샤워실 배수구는 물이 잘 빠지지 않아 역류한 적이 있다. 이씨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데다 이런 스트레스까지 겹쳐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늘어간다”고 말했다.
대구에선 8~10평(26.5~33.1㎡)에 베란다 딸린 원룸에 살았던 이씨. 서울 고시원 생활은 고역 중의 고역이었던 셈이다. 이씨는 “한달 전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돼 앞으로 청년전세대출을 받아 새 거처를 구할 계획을 짜고 있다”며 “전국의 고시원 입주자들이 다들 괜찮은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 3회는 11월 4일자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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