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슈리성 터 복원 상징물에 화재
일본 SNS서 “한국인에 의한 방화” 주장 퍼져
일본 오키나와((沖繩)현의 유명 관광지 슈리성(首里城)에 화재가 발생하자 이를 한국인이나 재일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의 소행으로 모는 괴소문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날 일본 지역신문인 오키나와타임즈는 “슈리성 화재를 두고 인터넷에 재일 한국인의 소행, 중국인 또는 한국인에 의한 방화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증오 게시물이 잇따랐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슈리성 화재가 발생한 전날부터 일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외국인 방화설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한국인 때문에 슈리성에 불이 났다”, “외국에서 온 간첩이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또 포털사이트인 구글 검색창에 ‘슈리성’이나 ‘방화’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한때 한국인이나 중국인, 재일 등의 단어가 자동완성으로 따라붙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슈리성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번성한 류큐(琉球) 왕국 시대인 약 5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로, 193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막바지였던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가 이후 전체 건물이 차례로 복원됐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오전 2시 40분쯤 슈리성의 중심 건물인 정전(正殿)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인근으로 번져 주요 건물이 거의 소실됐다. 경찰 측은 화재가 발생한 날 새벽까지 축제 행사를 준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불을 질렀다는 루머뿐 아니라 때마침 한국 출장 중인 다마키 데니(玉城丹尼) 오키나와 지사의 지시설이나 중학생 방화설 등 온갖 불확실한 정보가 떠돌고 있다. 전날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 한 영상은 “다마키가 한국으로 대피하고 있다. 지사가 (방화를) 지시했을지도 모른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일본 TBS 방송에서는 전날 인근 주민의 말을 인용해 “슈리성 근처에서 모닥불을 피우던 중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밤 12시 전후 모닥불을 봤다는 사람이 있다”는 증언을 전하면서 중학생 방화설 루머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원인이 불명확한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불안감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인 방화설은 ‘가짜뉴스’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33명의 사망자가 나온 일본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화재 당시에도 “방화는 한국인의 습성” “일본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보복”이라는 괴소문이 일본 온라인을 통해 확산된 바 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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