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이태원 일대 돌아보니 거리 곳곳 인파로 꽉차
인근 파출소는 비상, 교통 마비에 순찰차도 제때 출동 못해
지난 31일 할로윈의 성지로 통하는 서울 이태원은 그야말로 헬(지옥)이었다. 할로윈을 맞아 온 얼굴에 피칠갑 분장을 한 사람, 단순히 할로윈 분위기만 즐기려고 온 사람, 할로인 대목을 맞아 한몫 잡으려는 호객꾼까지 뒤섞이면서 이태원 일대는 평일인데도 새벽 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이 일대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순찰차가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태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부터 할로윈은 시작됐다. 조커와 좀비 분장을 한 무리들이 곳곳에 서 눈에 띄었다. 마치 누가 더 악당 분장을 잘했는지 내기라도 한 것처럼 상당히 공을 들인 모습이었다. 이태원역에서 내리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조커 분장을 한 연인, 인민군 복장을 한 남자, 공룡 분장을 한 가족 등 다양한 분장을 한 이들이 넘쳐났다. 평범한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태원 1번출구 근처 해밀톤 호텔 뒤편 거리 한쪽엔 특수분장을 해주는 좌판대 50여개가 줄지어 있었다. 조커는 2만5,000원, 뱀파이어처럼 분장하는 덴 3만원을 받았다. 꽤 비싼 가격인데도 좌판대마다 특수분장을 하려는 이들로 붐볐다. 오후 9시쯤 되자 이태원의 할로윈은 절정에 이르렀다. 이태원의 좁은 거리마다 인파로 가득 차 앞으로 걸어가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였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입구와 끝 사이는 대략 200미터 남짓 거리인데, 이 거리를 걷는데 30분도 넘게 걸렸다. 한 공간에 하도 많은 사람이 몰려 그런지 이즈음부터 스마트폰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좁은 거리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인근 도로로 쏟아지면서 저녁부턴 이 일대 교통도 마비됐다. 교통 혼잡은 오후 11시쯤 사람 둘을 태운 경운기가 등장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운기가 교통에 영향을 준 건 확실한데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우리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근 이태원파출소도 비상이었다. 파출소엔 10분에 한번씩 도난, 분실 신고가 들어왔고 단순 주취 폭행 사건 접수도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인근 도로가 꽉 막힌 바람에 경찰이 신고가 들어와도 순찰차를 제때 타고 가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일부 시민은 출동하는 경찰이 할로윈 복장을 한 줄 알고 막아서는 이도 있었다.
할로윈 열기는 새벽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꽉 막힌 도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시민들이 너도나도 택시를 부르면서 새벽 내내 택시 전쟁이 벌어졌다.
이런 할로윈 열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이날 이태원을 찾은 대학생 김모씨는 “한국서도 할로윈을 즐길 수 있어 좋긴 한데 아무 곳에서나 침을 뱉거나 술을 마시는 등 축제 매너가 없는 이들도 많아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할로윈 축제는 긍정과 우려 두 측면이 있다”며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할로윈 축제가 커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축제의 창구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사진ㆍ글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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