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인권 탄압 상징 삼청교육대 언급했다 역풍
박 전 육군대장 “극기훈련” 언급에 논란 확산
“삼청교육대 교육을 한 번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공관병 갑질 의혹을 제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향해 한 말입니다. 그의 ‘삼청교육대’ 발언에 임 소장은 “2019년에도 우리 국민이 언론에서 삼청교육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며 “실로 충격적인 일”이라고 반응했습니다.
박 전 대장의 이 발언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면서 그를 영입하려던 자유한국당도 주춤하는 모양새죠. 대체 삼청교육대가 무엇이고, 박 전 대장이 이를 언급한 게 논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삼청교육대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발령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합니다. 같은 해 8월 4일 ‘사회악 일소 특별 조치’와 더불어 ‘계엄포고령 제13조’ 발령 후 ‘삼청 5호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것이 삼청작전입니다. 국보위는 이를 근거로 ‘사회악’을 소탕해 국가 기강을 확립한다며 전국 각지 군부대에 삼청교육대를 설치했는데요.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80년 8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삼청교육을 이유로 영장도 없이 체포된 이들은 무려 6만 755명에 달합니다. 체포된 이유는 △개전의 정이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중 현행범과 재범 우려자 △사회풍토 문란사범 △사회질서 저해사범 등이었습니다. 이중 A급으로 분류된 3,252명은 군사재판 또는 검찰에 인계됐고, BㆍC급 3만 9,786명은 ‘순화 교육’을 이유로 7개월 이상 군부대에서 복역했죠. 그 중에는 학생과 여성 수백 명을 포함해 전과가 아예 없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정권 초기 무자비한 인권탄압의 한 사례로 꼽힙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목사)는 “삼청교육대 사건은 공직자 숙정이나 언론인 해직 및 언론 통폐합과 함께 내란죄의 일부분으로 판단되며 이 교육 입안에 정권 창출 및 정당화라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도 했죠.
특히 숨진 이들도 많습니다. 국방부가 88년 9월 5공비리 특위와 이듬해 9월 당시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50명이 교육훈련 중 숨지고 397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은 “삼청교육 운영과정에서 각종 비인도적 조치로 입소자들을 숨지게 하거나 치유불능의 후유증을 갖게 한 부대장들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또 문제는 이들 중 일부는 사인이 불분명하거나 조작됐다는 것이죠. 과거사위가 2007년 11월 10일 발표한 삼청교육대 사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청교육대에서 숨진 일부 사망자의 사망 원인은 조작되고, 사체처리 소각장의 존재조차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예컨대 자살로 알려진 김정호씨의 경우, 80년 8월 7일에는 폭행치사로 최초 보고됐지만, 5일 뒤 보고서에는 자살로 사인이 바뀌었습니다. 병사처리 된 한상호, 신동훈, 유치일씨도 폭행 등에 의해 숨졌을 것으로 판단됐고요. 과거사위는 “전체 사망자 54명 중 67%에 달하는 병사자 36명의 사인에는 사망 과정과 법의학적 판단에 상당한 의혹이 있지만, 당시 수사는 극히 미진했다”고 밝혔습니다.
독재 정권 시절 인권 탄압의 수단이 된 삼청교육대를 거론한 박 전 대장 발언에 그를 영입하려던 한국당도 당황한 모양입니다. 박 전 대장의 삼청교육대 발언을 포함한 기자회견 내용이 알려진 뒤 한국당은 인재 영입 명단 공개를 연기해 박 전 대장 이름을 명단에서 빼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았죠. 홍준표 한국당 전 대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삭제한 글에서 “이분(박 전 대장)은 5공 시대에나 어울리는 분이지, 이 시대에는 부적절한 인물로 보인다”며 “만약 이분을 영입한다면 우리 당은 5공 공안 검사 출신(황교안 한국당 대표)이 5공 장군을 영입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청교육대 발언 논란은 향후에도 그 불씨가 쉽게 꺼지지 않을 듯합니다. 한국당의 인재 영입 여부와 무관하게 박 전 대장은 정계 입문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요. 그는 5일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삼청교육대 정당성 인정이 아니라 임태훈의 이중성에 분노했다”며 “(임 전 소장이) 극기훈련을 통해 단련을 받으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분노의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5공화국 인권 탄압의 상징인 삼청교육대를 ‘극기훈련’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또 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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