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동, 겨울의 시작이에요. 겨울과 세탁소는 닮은 이미지예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는 카뮈의 문장은 덧붙일 수 없는 깨끗함이고, 그 깨끗함에 이어 오는 겨울은 투명이지요. 잃어버림-슬픔-표백-망각을 거치며 오는 겨울은 찬 물기, 눈부신 슬픔이지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도 거기 위치하지요.
“아무래도 고된 날에는/일하기 싫어요, 라는 팻말을 걸고 문을 닫아요.” 팻말을 걸어야 문을 닫을 수 있어요. 팻말은 문장이 써져야 해요. ‘일할 수 없어요’가 아니라 ‘일하기 싫어요’라는 잽을 날릴 수 있는 것은 “문장 덕분”이지요. “때문”은 “먼 구원과 가까운 망각 사이”의 연연이거나 머뭇거림이 포함되기도 하는데, “덕분”은 선명한 선택이지요. 든든하니까, 문장의 힘을 아니까, “모든 기억이 표백되는 겨울은 두번째 생”이라는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계절과 계절 사이 환절기라는 ‘무명’이 있듯이,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도 거기에 있을지 몰라요. 무명은 끝내 무명일 때 표백될 수 있으니까요. 표백된 슬픔이 모여드는 곳을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촉감의 성질까지는 잃어버리지 않은 덕분이지요. 얼룩과 표백 사이, 표백과 투명 사이, 상강과 소설 사이, 오므리는 입술을 닮은 문장. “아무렴요 아무렴요”는 체념 아닌 리듬. 맨 얼굴이 표백으로 다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주문이에요. 명랑하라는 명령이에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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