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비극, 다단계 금융사기] <1>사용처를 밝힐 수 없는 돈
‘제2 조희팔’ 불리는 IDS홀딩스, 수백억 현금 등 1100억 행방 묘연
피해자 3만명 넘는 VIK 사건도 정치권 커넥션 제대로 수사 안 해
“사용처 밝힐 수 없는 돈도 있다” IDS 前대표 檢서 로비 암시 진술
#지난달 29일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법정에선 선고가 끝난 뒤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1조원 금융 다단계사기 사건인 IDS홀딩스의 모집책 다수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지자 방청객들은 고함을 지르고 선고가 끝난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법정을 떠날 줄 몰랐다.
이날 법정을 지킨 방청객 10여명은 대부분 3년 전 검찰 수사로 실체가 드러난 IDS홀딩스 투자사기의 피해자들이었다. 외환거래를 통한 고수익 보장이라는 말에 속아서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10억원 가까이 날린 피해자들은 엄한 처벌을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법정에서 만난 한 피해자는 “저놈들 마수에 걸려 무려 50명이 죽었다. 법이 물렁하니까 다단계 범죄가 계속 설치는 거 아니냐”라며 오열했다. 이튿날 같은 법원에선 또 다른 IDS 모집책에 대한 선고가 이어졌다. 이번엔 징역 3년의 실형이 나왔다. 재판장은 “엄청난 엄벌요청서가 들어왔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달 6일 찾은 서울 논현동의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무실은 과거의 화려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업체의 7,000억원 투자사기가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VIK는 강남 한복판 빌딩 3개층을 통째로 임대해 사무실로 이용하며 돈을 끌어 모았다. 그 곳에선 수시로 고객 초청행사가 열렸고, 비상장주식 투자로 고수익을 꿈꾸는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현재는 예전과 달리 지하 1층 구석으로 사무실을 옮겨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사무실 내부에는 ‘2019 함께 만드는 희망찬 밸류’라고 적힌 현수막이 있었지만, 현재 회사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구였다. 사무실에서 만난 VIK 직원은 “잘 나갈 땐 직원이 12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30명으로 줄었다. 남은 직원들도 재판 받느라 수시로 법원을 오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VIK가 검찰 수사를 받을 때는 피해자들이 찾아와 항의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4년여가 흐른 지금은 피해자들의 발길마저 끊긴 상태라고 직원은 전했다. 하지만 발길이 끊겼다고 분노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달 17일 VIK 사건 관련자가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는 등 법적 심판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피해자들은 “지금도 VIK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IDS와 VIK는 제이유(JU)네트워크와 조희팔 사건 못지 않게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초대형 다단계 사기사건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그 심각성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주범에 대한 법적 처벌이 마무리되면서 사건은 더욱 잊혀지고 있지만, 공범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아직도 이어지는 등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사기극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화병으로 숨진 사람들이 수십 명에 달할 정도로 후유증을 남겼지만, 피해회복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하다. 은닉재산에 대한 추적이나 금품로비 의혹에 대한 의문도 해소되지 못했다.
사회적 관심이 시들해진 사이 IDS와 VIK 모방사건이 이어졌고,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면서 금융다단계 사기사건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2013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유사수신 피해 신고건수는 83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889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도 사기피해를 예방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은 무관심 속에 3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1조 금융사기 IDSㆍVIK 백서’라는 주제로 4회에 걸쳐 끝나지 않은 비극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20년 증권맨까지 속아
최용환(가명ㆍ54)씨는 금융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20년 증권맨이지만, IDS홀딩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한 달 만에 13억원을 날렸다. 이달 1일 기자와 만난 최씨는 “악마는 가장 힘들 때 찾아오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한때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을 보며 ‘탐욕 때문에 돈을 잃고 왜 도와달라고 하나’라며 혀를 찼지만, 지금은 자신이 그 처지가 됐다.
2015년 증권사 동료에게 IDS 상품을 소개 받은 최씨는 월 1~2%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이율로 따지면 12~24%인데, 증권상품 중에도 그런 수익을 내는 곳은 드물었기 때문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4월 동료가 “그 동안 큰 이득을 봤다”며 재차 투자를 권유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참석한 투자설명회에서 최씨는 IDS는 유사수신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고문변호사의 논리적인 설명에 모든 의심을 거뒀다. 서울 여의도의 화려한 사무실은 물론 홍콩 법인에도 직접 가보며 발품을 팔았다. 그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도 못 이룬 일을 젊은 김성훈(IDS홀딩스 전 대표)이 해냈구나’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자신의 돈 4억8,000만원에 누나와 사촌 돈까지 13억원을 IDS홀딩스에 투자했다.
그러나 최씨가 사기극의 실체를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IDS 지점장과 함께 미국 서부여행을 떠난 최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김성훈의 체포 소식을 들었다. 돈을 넣은 지 불과 한 달만의 일이었다. 최씨는 “모든 게 무너져 내릴 것 같았죠. 금융전문가로서 창피하기도 하고”라며 괴로워했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해봤지만, 사기범들은 양심에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데 내가 왜 죽나 싶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로비자금 은닉재산 어디로
김성훈씨가 IDS홀딩스 피해자에게 받아 챙긴 1조원 이상 가운데 1,101억원의 사용처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특히 자신의 계좌에서 출금된 수백억 원대의 현금에 대해선 별도 장부를 작성하지 않았다. 김씨는 현금 사용처가 관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검찰에서 “사용처를 밝힐 수 없는 돈도 있는 법입니다”라며 뼈있는 말을 남겼다. ‘내가 입을 열면 많은 사람들이 다친다’는 걸 암시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김씨의 금품로비 수사와 관련해선 수사와 단속정보를 제공해준 대가로 6,390만원을 수수한 경찰관 한 명만 제대로 처벌됐을 뿐이다. 더구나 뇌물을 수수한 경찰은 재판에 넘겨놓고, 돈을 건넨 김씨는 2년이 넘도록 기소조차 안 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수사에 협조했고 이미 사기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지만, IDS 피해자들은 정치권과 법조계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IDS 피해자들은 검찰이 은닉재산 찾기에도 소극적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IDS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김성훈씨는 국내외 여러 곳에 재산을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가 셰일가스사업 투자를 내세워 미국에 텍사스 오일(TEXAS OIL)이란 회사를 세우고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과 외환거래를 하겠다며 홍콩에 설립한 IDS 포렉스(FOREX)도 은닉재산 세탁장소로 지목됐다. IDS와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뒀던 사모펀드 메디치프라이빗에쿼티도 의심스런 회사로 거론된다. 회사 경영진이 김씨 측근이거나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김성훈 파산관재인을 맡고 있는 임창기 변호사는 한국일보에 “은닉재산은 3억원 정도 찾아서 집행한 것이 전부다. 김씨 명의로 된 재산은 시골의 땅까지 찾았지만, 그 외에는 아직 찾은 게 없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 11일 발생한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희생자 3명이 IDS홀딩스 모집책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피해자들은 김씨의 은닉재산과 관련한 사건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들 3명은 IDS를 나와서 제이에스앤피(JS&P)라는 다단계 회사를 차렸다. 김성훈씨가 2015년 6월 유죄판결이 나오자 그 직후부터 별도 회사를 차리고 1년 동안 IDS와 똑같은 사기수법으로 138억원을 끌어 모았다. 이들 3명은 수사망이 좁혀오자 홍콩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했다가 피살 당했고, 이들 밑에서 일했던 중간간부 한 사람만 법적 처벌을 받았다. 살인범 중 한 명은 한국으로 이송돼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지만, 박모씨는 필리핀 감옥에서 두 차례나 탈옥해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IDS 피해자들은 필리핀으로 도주했던 3명이 IDS 출신으로 알려진데다가 김성훈씨 재판이 시작된 날 피살됐다는 점을 들어 은닉재산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VIK 대표 이철씨를 두고는 정치권 로비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VIK 직원들은 이씨가 평소 여권인사와의 친분이 두터웠다고 말하고 있지만,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에게 불법 정치자금 6억2,000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을 뿐이다. VIK가 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하는 비상장회사에 투자하는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투자 받은 기업에게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거나 투자를 빙자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이씨가 2015년 9월 구속되기 두 달 전까지 VIK 경영기획팀 직원으로 2년 반 동안 근무했던 A(39)씨가 2015년 검찰에 이씨와 VIK 간부의 금품수수 의혹 3가지를 제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제보내용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만 말했다. 이씨의 측근으로 일하다가 VIK의 내부 제보자로 변신했던 A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입성해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다.
IDS와 VIK에 모두 투자했다고 밝힌 50대 남성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검찰이 수사에 소극적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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