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 이슈를 읽다] <1>혼란에 빠진 중학생, 고입설명회를 가다
“외고상 하나만 받으면 끝나요.”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고입설명회. 강사로 나선 유명 사교육 업체의 입시 전문가가 강당 위 스크린에 내신등급이 2.5등급인 일반고와 4.5등급인 외고 두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띄우며 말했다. 그는 외고 학생의 학생부에서 수상경력으로 기록된 ‘○○외고상 대상’에 주목했다. 대다수 외고에서 운영 중인 일종의 인재상인데 학교마다 소논문, 봉사활동 등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을 선발해 수여한다.
그는 이어 “대학들도 ‘고교 프로파일’을 통해 이 상을 어떤 학생이 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며 “특히 수상경력 기재가 한 학기당 1개로 제한되면서 이제는 상의 개수보다는 상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고 학생도 ‘교과우수상’ ‘영어 에세이 작성대회’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었지만 그저 나쁘지 않은 상일 뿐, 외고상이 대입에서 갖는 위력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입 결과는 어땠을까. “일반고 2.5등급 학생은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원서도 못 썼어요. 외고 4.5등급 학생은 어떨까요? 셋 중 한 곳에 지원했고 최종 합격했습니다. 이 게 현실입니다.”
설명회장을 나오는 학부모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자사고ㆍ외고ㆍ국제고의 ‘단계적 폐지’에서 입장을 바꿔 2025년에 이 학교들을 ‘일괄 폐지’ 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사교육 업계는 정부 메시지와 무관하게 당분간은 이러나저러나 자사고, 특목고가 대입에서 유리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정시 확대는 없다’던 입장을 뒤집고 정시를 확대한다던 참이었다. 잇따른 정책 급변, 사교육 업계의 쏟아지는 정보에 학부모들은 불신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입제도 “자주 바뀌고 너무 복잡해”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됐다. 대입제도가 ‘너무 자주 바뀐다’와 ‘너무 복잡하다’다. 이날 설명회에서 만난 서울 노원구의 이모(48)씨는 내년 중3이 되는 아이를 수시 성과가 좋다는 자사고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정시를 확대한다는 정부 말에 고민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같이 온 엄마랑 설명 들으면서 아 저건 고1 대입이지, 저건 2021학년도부터지, 이런 점들을 내내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 단위로 바뀌니 내년엔 또 어떨지 알 수 없다”며 “최소한 6학년을 졸업할 때쯤엔 아이가 치를 대입제도가 확정돼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학부모들의 혼란은 당연한 결과다. 현 고등학교 1, 2, 3학년 대입은 모두 틀 자체가 다르다. 일각에선 이를 ‘한 지붕 세 가족’ 대입이라고 부를 정도다. 고3은 2009교육과정으로 배우고 이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출제한 수능을 본다. 고2는 새로운 교육과정인 2015교육과정으로 배우지만 지금과 동일한 형태의 수능을 본다. 하지만 고1은 2015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문ㆍ이과 통합형’ 수능을 치른다.
대학마다 정시와 수시 비율도 제각각이고, 정시 확대 기조인지 수시 확대 기조인지도 때에 따라 뒤집어지기 일쑤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난해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라는 진통 끝에 2022학년도부터 정시를 30%로 확대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 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또 다시 대입제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정시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서도 대입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시를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정시는 이르면 2022학년도부터 서울 주요 대학 중심으로 30% 이상으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즉, 한 달여 뒤면 고2가 되는 고1의 대입제도도 아직 ‘미정’이라는 얘기다. 서울대만 해도 대입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며 예정보다 약 1년 먼저 2022학년도 정시 비율을 2021학년도보다 8%포인트 올린 30.3%로 발표했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또다시 계획을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중3 임서연(13)양은 “학원에서도 정시 준비하랬다가 수시 준비하랬다가 입시 상담이 자꾸만 바뀐다”며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시든 수시든 그냥 정책이 변하지 않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 중학생 이모(14)양은 “고1부터 시작하면 늦는다고 해서 학종에 대비해 이미 동아리도 하고, 봉사활동도 다니고 있다”며 “정시 위주로 바뀐다고 해서 입시 스트레스나 경쟁이 줄어들 것 같지 않아 그럴 바에야 그동안 해왔던 것 그대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교육정책 탓에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이날 설명회를 찾은 서울 강남구의 중3, 중1 학부모 장모(50)씨는 “정책에 관계없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서 “설명회 내용을 보니 상위권 대학은 2022학년도 선택과목을 이미 지정해 놨던데, 그런 걸 알려면 이런 데를 와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온 중2 학부모 홍모(49)씨도 주기적으로 각종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는 “엄마가 선택과목을 ‘미스’해서 아이가 원하는 대학을 지원 못하는 경우도 봤다”며 “학종이든 수능이든 사실 애들은 뉴스 잘 보지도 않고 모르니 입시 정보는 엄마 숙제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에선 새 수능으로 대입을 치르게 될 중학생을 위한 자세한 설명도 이어졌다. 교육부는 문ㆍ이과 통합을 핵심으로 하는 2015교육과정에 따라 2022학년도부터 수능의 탐구 과목을 문ㆍ이과 관계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과생도 사탐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말만 믿고 과목을 선택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16개 주요 대학은 자연계열에 지원할 학생의 경우 과학탐구 중 두 과목을 택하도록 지정해놨기 때문이다. 수학은 ‘확률과 통계’를 제외하고 ‘미적분’과 ‘기하’ 중에서만 한 과목을 택하도록 했다.
사교육 업계의 분석력과 정보력은 공교육, 정부를 앞선 지 오래다. 설명회가 있고 일주일쯤 지난 5일, 교육부가 발표한 13개 대학 학종 실태조사에서 고교 프로파일의 실체나 대학들이 일반고 1등급을 외고 3등급으로 간주한다는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사실로 확인됐다. 정부는 2007년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고 12년이 지나서야 공식 확인했지만, 사교육 업계에서는 수 년 전부터 공공연한 ‘팩트’로 여겨 왔던 내용들이었다.
◇교육에 대한 논의 없이 ‘수시-정시’ 논쟁만
교육계에선 정부가 교육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다 보니 불필요한 혼란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시 확대도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9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2%가 정시를 지지했다.
2003년부터 10년 넘게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입학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 온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지난 정부는 대입에 관심이 없어 아무 결정도 못 해 문제였다면, 현 정부는 대입을 정치적으로 보니까 문제”라며 “대입제도에 대한 여론의 향방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을 의식하니 스텝이 꼬이기도 한다. 교육부가 2025년 전면 도입한다는 고교학점제는 수시를 염두에 둔 정책인데, 고교학점제를 추진한다면서 정시 확대를 하겠다고 발표하는 게 대표적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정책은 수능과 내신의 평가제도, 고교학점제, 자사고ㆍ외고ㆍ국제고 폐지, 정시와 수시의 대입제도가 서로 얽혀 있다”며 “각론을 총론으로 엮어서 어떻게 국민이 안심하고 따라올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수시냐, 정시냐 외에 학교 교육, 교육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초3 학부모 백운희(38)씨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교육 문제에 대해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시점이었는데 정시 확대 발표를 하면서 교육 정책 논의는 또 다시 ‘수시 아니면 정시’로 축소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백씨는 이어 “학부모 모두 입시 정책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위한 교육의 진짜 의미에 대해 논하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범 교수는 “대학입시를, 줄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라는 지엽적 관점으로 보다 보니, 수시와 정시 문제점과 공정성 여부를 논의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교육을 중심에 놓고 이에 맞는 적절한 대입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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