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청서 ‘위안부 합의’ 기술하며 자의석 해석
외교부 “피해자 입장 감안해서 안 썼을 뿐” 반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과 반하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확인했다는 주장을 일본 정부가 공식문서에 담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측은 그간 “강제 연행이 입증되지 않았다”라며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 ‘성노예’라는 표현의 사용에 반발해 왔다. 이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공식 명칭으로 확인한 것을 마치 일본 측 주장에 동의해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자의적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외무성이 4월 펴낸 2019년 외교청서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은 2015년 12월 일한 합의(한일 위안부 합의) 때 한국 측도 확인했으며,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당시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장관이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한국 측이 일본 주장에 동의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전 외교청서에는 ‘성노예’라는 표현과 관련해 사실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일본 측 입장을 국제사회에 계속 설명하겠다는 방침을 담아왔다. 그러나 올해 “한국 측도 확인했다”는 기술을 추가, 한국 측이 동의하고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외교부는 11일 “한국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동의한 것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우리 공식 명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고 일본 외교청서 주장 내용을 부인했다. 위안부 문제는 ‘분쟁 중 성폭력’이란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성노예라는 표현은 피해자들의 입장을 감안해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한 한국 측 태스크포스(TF)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측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비공개 요청이 있었고, 한국 측은 해당 표현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인 점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확인했다. 이에 TF는 “당시 대응이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측이 이러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2월 당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심의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고노 다로(河野太郞) 당시 일본 외무장관은 “사실에 반하는 표현이 사용됐다.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한 바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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