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상류 하천 100∼200m구간 핏물로 오염
살처분 돼지 사체 외부 노출 부실관리 도마위
파주 주민은 “안보 관광 중단에 생계 막막” 호소
“파 수확을 위해 밭에 왔다가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 일도 포기한 채 그냥 돌아와야 했어요.”
경기 연천군 중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마거리 일대에서 파 농사를 짓는 A씨는 12일 “악취가 너무 심해 밭에서 100m 떨어진 개천을 둘러보니,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며 이같이 전했다.
민통선 안에서 콩 농사를 짓는 B씨도 “설마 설마 했는데 돼지 핏물이 하천까지 흘러 들어 갔다니 기가 찬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날 찾은 마거리 민통선 통제 초소를 오가는 농민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두웠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방지를 위해 살처분 한 뒤 방치한 돼지 사체에서 핏물이 새어 나와 임진강 지류 하천인 이곳 마거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초유의 사건을 접하면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오염된 핏물이 강이나 토양으로 흘러 들어 농사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듯 경기도 등 수질검사 및 방역관련 차량이 쉴 새 없이 초소를 드나들었다.
지난달 9일 연천군 신서면 농장에서 9번째 발병을 마지막으로 추가 확진이 없이 곧 끝날 것 같던 경기북부지역의 ASF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돼지사체 침출수 유출사고로 인근 임진강 오염 우려가 확산되는가 하면 안보 체험 관광이 중단되면서 주민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연천군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10∼11일 돼지 살처분 진행 중 매몰 처리 지연으로 4만7,000여 마리 돼지 사체를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 군부대 매몰지에서 트럭에 실은 채 쌓아둔 게 화근이 됐다. 돼지 사체들이 외부에 노출된 채 방치됐고, 비가 내리면서 돼지 핏물이 빗물과 함께 새어 나와 인근 하천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고로 임진강 지류 마거천과 연결된 실개천 100∼200m구간이 붉게 물들며 오염됐다. 사고가 난 매몰지는 임진강과는 10여㎞, 임진강 상류 상수원과는 직선거리로 8㎞가량 떨어져 있다.
돼지 침출수가 이미 임진강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임진강 상수원에 대한 오염 우려도 제기됐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이틀간 하천의 유속이나 수량으로 미뤄 인근 임진강 상수원보호구역까지 침출수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와 연천군은 유출된 침출수를 수중 모터로 빼내고 등 긴급 조치에 나섰다. 마거천과 임진강 일대 물을 채수해 수질검사도 진행하고 있다.
파주시는 돼지 침출수 일부가 임진강으로 유입될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파주 북부지역에 공급되는 수원을 팔당 광역 상수도로 대체해 공급하기로 했다.
파주 주민들도 ASF 확산에 따른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ASF 확산방지를 위해 지난달 2일부터 도라전망대, 제3땅굴 등 민통선과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대한 안보와 체험 관광이 중단되면서 농산물 판매 매출이 뚝 끊겨 생계에 직격탄을 입고 있는 것이다.
참다 못한 장단면과 통일촌, 대성동마을 주민 등 100여명은 8일 통일대교 남단에서 안보 관광을 재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시와 정부는 특단의 대책도 없이 한달 넘게 관광지 통제만 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존권은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일촌 농산물판매장의 10월 매출이 4,000만원으로, 지난해 10월(4억원)에 비해 10분1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 관계자는 “국방부에 관광재개를 요청했으나,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재개 시점은 아직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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