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청문회] <2>커플 유튜버
연애는 언제나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영역일까요. 젊은 연인 이소영(88년생), 김근명(89년생) 씨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들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커플 유튜브 채널 ‘소근커플’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입니다. 소근커플은 맛집, 옷 가게, 유명 여행지 등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기고, 기념일이 되면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는 평범한 연인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소소한 연애 기록을 영상으로 제작해 올리자 107만 명의 구독자가 모였습니다. 지금 소근커플은 국내 최대 크리에이터 소속사 ‘다이아 TV’에 소속된 어엿한 스타 유튜버입니다.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커플 유튜버’는 이미 오래 된 대세입니다. ‘00커플’의 이름을 달고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 연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되면 ‘나도 저렇게 연애하고 싶다’는 댓글도 달립니다. 그러나 데이트 영상을 보며 미소 짓는다는 이유로 밀레니얼을 ‘연애하고 싶어 안달 난’ 존재들로 볼 수 있을까요. 이들은 어떤 상황에선 주체적으로 ‘탈연애’ 구호를 내걸기도 하고, ‘연애는 하고 살아야지’라는 기성 세대의 훈계엔 특히나 질색합니다. 그렇다면 밀레니얼들이 연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배경은 무엇이며, 이들이 그리는 바람직한 연애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미 우리는 연애 전시 문화에 익숙
도쎄= 이번 기회에 커플 유튜브 채널을 여러 개 더 둘러봤는데, 다양한 컨셉이 있지만 역시 소근커플처럼 적당히 설레고 재미있는 데이트 일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더라. 이렇게 연예인도 아닌 사람들의 연애를 일상적 콘텐츠로 즐기는 문화는 우리 세대에 와서 더욱 일반화된 것 같아. 물론 소근커플은 이 채널을 통해 준 연예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여의도불주먹(이하 불주먹)= 현실의 연애는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 없는데, 그런 영상엔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연애의 이상이 현실적 조건 안에서 펼쳐지잖아. 소근커플의 경우 여자친구인 소영씨가 방 정리를 굉장히 안 하는 편이라, 남자친구 근명씨가 난장판인 방을 기습적으로 공개하고 다시 깔끔히 치워주는 영상이 여러 개 있어. 난 이런 게 현실(더러운 방)과 이상(다정하게 방을 치워주는 남자친구)의 경계에서 최대한 사람들이 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어.
도논= 나도 그 장면 봤어. 사실 나는 이제 별로 한국 사회에서 연애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 사람인데 그런 걸 보면 은근히 광대가 올라가고(얼굴 광대부분이 올라감ㆍ웃는다는 뜻) 감정이입이 되더라. 연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영상을 보는 시간 동안만큼은 실제 커플의 일상이라고 계속 상기하며 보니까 대리만족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외거노비= 사실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애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약간 망설여져. 나의 실제 연애 서사를 공개한다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잖아. 전업 유튜버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배테= 근데 사실 우리 세대에서 연애를 포함한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전시하는 행위는 흔해. 유튜브 스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지. 인스타그램만 해도 게시물 주제를 압축해 표현하는 ‘해시태그’ 종류 중 아예 ‘#럽스타그램(러브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 이라는 게 있잖아. 내 친구들 중에도 그 #럽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달고 연인과의 행복한 날들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 세대에게 연애는 그만큼 드러내고 공유하기에 익숙한 소재로 자리잡은 것 같아. 꼭 유명인의 연애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탈연애’와 ‘커플 유튜브’는 공존할 수 있을까
배테=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어. 우리는 연애 콘텐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이면서도, ‘탈연애’ 구호를 등장시킨 세대이기도 하다는 거야.
도쎄= 우리의 탈연애 운동은 ‘이런 불평등한 조건 위에서’ 더 이상 연애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핵심이라고 봐.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남녀 간 위계 구조나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진실된 의미의 ‘연애’라는 게 과연 가능하겠냐는 거지. 탈연애가 ‘모든 연애는 해롭다’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
도논= 맞아. 젠더 문제의식에서 나온 탈연애 흐름도 있고, 우리 세대에겐 더 이상 연애가 ‘사회적 필수 요건’이 아니기도 해. 개개인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연애를 해야 건실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메시지가 별로 유효하지 않잖아. ‘내가 하고 싶을 때 원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친구들이 더 많지.
불주먹= 나도 도쎄와 비슷한 관점에서, 탈연애의 메시지와 모든 커플 유튜브 채널의 메시지가 완벽히 대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게다가 지금 유튜브에서는 퀴어(동성애) 커플, 국제 커플 등 다양한 형태의 커플 유튜버들이 가시화되고 있어. 그런 사례를 통해 연애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넓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누헨지니= 근데 사실 커플 유튜브 채널들을 보면 압도적인 비율로 이성애 커플이고, 전형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단일한 연애 방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긴 하잖아. 이런 게 탈연애 흐름을 방해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어. 연애 콘텐츠의 급증은 과연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줄까, 아니면 또 다른 차원에서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쪽으로 흘러갈까?
도논= 사실 기술이 발달하면 모든 종류의 콘텐츠가 동시에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영상이 고정된 성 역할이나 편견을 강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들의 연애 형태를 이유만으로 비판할 순 없을 것 같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 취사 선택이 가능하다고 봐.
◇ 연애, 할 거라면 모든 성별에서 고르고 깊은 논의 필요해
불주먹= 결국 가장 좋은 방향은 ‘건강한 연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상상해보는 문화를 만드는 것일 텐데. 우리 세대는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인가?
배테= 남녀차이가 있는 것 같아. 커플 유튜브 구독자 성비만 해도 여성이 압도적이야. 남자들은 연애 콘텐츠를 어디서 어떻게 접해? 친구들끼리 연애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는지도 궁금해.
누헨지니= 경험상 남자친구들 사이에선 연애가 그 정도로 진지한 대화 주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일정선 이상 해본 적이 많이 없어. 가벼운 사람들은 너무 가볍게만 얘기하고, 진지한 사람들은 또 진지해서 말을 안 하는 거지. 여자친구 예쁘냐 물으면 평하는 게 싫으니까. 그리고 남자들 사이에선 여자친구 있는 남자가 말 꺼내면 장난으로 욕하고 때리는 문화도 있잖아.
도논= 근데 막상 또 놀이공원 같은 곳에 남자들끼리 가면 놀리는 정서도 있지? 여자친구가 없으면 하자 있는 남자처럼 치부하면서, 동시에 진지한 논의를 낯간지러워하게끔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모순적인데.
외거노비= 어릴 적부터 형성된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 동화책을 졸업하고 무슨 책을 접하느냐가 연애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남자애들은 뛰고, 땀 흘리고, 때리는 서사를 압도적으로 많이 접하는데 여자애들이 보는 건 거의 순정만화고. 그게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으니까. 나도 그런 환경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커플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사실 많이 오그라들었어.
배테= 유튜브 영상은 취향 차이가 있으니까. 사실 나도 좀 오그라들었거든. 반대로 여성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로맨스에 대한 소비가 좀 과하게 주입된 측면이 있어. 부모님들이 “대학 가면 남자친구 생기니까 공부해” 라고 하는 것도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 거잖아. 남자친구 사귀려고 대학가는 것도 아닌데.
도쎄=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인생에서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건 중요한 부분이잖아. 그러니 어떤 성별 집단에서든 그에 대해 진솔하고 깊은 논의를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너무 큰 환상을 갖는 것도, 지나치게 가볍게 치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젊은 여성들이 젠더 스테레오타입이 뚜렷한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깊은 논의에 따른 긍정적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논= 맞아. 그래서 사실 나는 소근커플 같은 사례도 꽤 괜찮다고 생각해. 연애 관련 논의를 너무 낯간지럽게 생각하지 않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야. 마초처럼 무신경한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보다는 나은 것 같아. 그리고 너희들이 정말 오그라드는 유튜브 채널들을 못 봤구나. 나중에 몇 개 더 추천해 줄게.
◇ 검증된 상대와의 안전한 연애를 찾아 헤매기도 해
도논= 난 커플 유튜브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데이팅 어플이 인기를 얻는 현상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해. ‘하려면 확실히 알아보고 해야지’의 연장선인 것 같기도 하고. 혹시 국내 데이팅 어플 중 ‘스카이피플’ 알아? 남자는 일정 학력이나 직장 조건을 인증해야만 어플을 이용할 수 있어.
배테= 난 그렇게 조건을 대놓고 거는 것은 좀 별로야. 그릇된 우월감을 정당화하는 거 아닐까.
누헨지니= 글쎄 난 그게 차라리 솔직한 것 같기도 하고. 30살이 넘어가면 ‘조건’을 보는 게 통하는 세상이니. 사회적 니즈에 딱 맞는 어플이 나왔다고 봐.
도쎄= 우리는 검증된 사람이 아니면 안 만나려고 하잖아. 그런 경향의 극단화인 것 같기도 해. SNS 염탐으로 상대를 미리 파악하는 문화도 있고.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말도 내가 속한 집단에서 지켜봐 온,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에서 나온 거잖아.
도논= ‘자만추’, ‘썸’(호감이 있는 사람들끼리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 친밀함을 쌓아나가는 단계)처럼 용어도 참 많은 걸 보면 확실히 우리 세대에선 연애 관련 논의가 더 세밀해졌어.
불주먹= 피로감 때문에 논의를 접고 아예 학을 뗀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래 그건 따져야 하는 거야”, “그것도 지키지 못한다면 난 아예 연애 안 해” 라는 식으로 논의가 점점 깊어진 분위기도 있는 것 같아.
도논= 청년 세대에선 ‘호구 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엄청 강하잖아.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각박하니까. 그래서 어딘가에 진입할 때 다 알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 그러니 논의가 세밀해질 수밖에.
배테= 썸을 거쳐야만 고백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기회비용 절감 심리와 관련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많이 공감했어. 무턱대고 고백하는 게 아니라 썸을 타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될 때만 고백을 한다는 거지. 이것도 일종의 ‘호구 되면 안 된다’는 의식 아닐까. 애인이 되지 않을 사람한테는 돈도, 시간도 안 쓰겠다는.
누헨지니= 비인간적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사람을 지나치게 물화하는 것만 경계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봐.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한 눈이 높아지는 것이고, 더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관계의 조건을 고민하게 되잖아. 무턱대고 쫓아가서 고백하고 떼 쓰고 이런 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도논= 그건 그래. 사실 나도 검증된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에 데이팅 어플을 사용해본 적이 있는데, 아예 날 소개하는 프로필 창에 가치관을 상세히 적어놨어. 인권 감수성이라든지, 젠더 의식 관련이라든지… ‘난 이런 사람이니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말을 걸지 말아라’ 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였지. 하하.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써 놓으니 나와 가치관이 통하는 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어. 데이팅 어플의 효용을 외적 조건하고만 관련 짓던 사고방식이 많이 깨졌던 경험이었어.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개인적인 신념과 가치관을 훼손하지 않고도 사람을 만날 효율적 통로가 될 수도 있는 거지. 날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하다면 말이야.
도쎄= 정말 용기가 좀 필요하긴 하겠다. 그래도 솔깃해지는 방법이야. 잠깐 동안만 가치관이 통하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통하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려면 더 깐깐해져야겠네! 머지 않아 탐정 버금가는 판단력을 길러야 할지도 몰라. 하하.
배테= 사람을 만나서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원래 어려운 일이고, 조금은 어려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건 아마 모든 세대에게 공통적일 것 같아.
정리=이정원 인턴기자
참여=박형기, 이정원, 이주현, 전혜원, 정해주, 차승윤 인턴기자
※밀레니얼들이 열광하거나, 주목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방담 형식으로 소개(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밀레니얼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숙제로 ‘자소서’를 써왔지만, 사실 ‘세대소개서’를 쓸 때는 난감합니다. 세대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인물’, 화제가 되는 ‘인물’을 통해 젊은 개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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