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히지트 바네르지, 에스테르 뒤플로, 마이클 크레이머는 저소득국 빈곤 퇴치에 무작위 비교연구(RCT)를 적용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RCT로 개입 대상 집단과 비대상 통제 집단을 무작위 선택해 결과를 비교했다. 의료연구자는 RCT로 신약이나 시술법을 시험하고, 빈곤 연구자는 다른 방법과 함께 어떤 개입이 가장 효과적인지 검토한다. 이런 작업 덕분에 RCT는 빈곤 퇴치를 위한 효과적 수단이 됐다.
그런데 RCT 적용에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신약이나 원조 수혜자를 무작위 선택해야 하고, 통제집단은 개입에서 제외되거나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인간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칸트의 원칙에 따라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RCT가 “학습을 위해 참가자의 복지를 희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모든 RCT를 거부하면 새 치료법 개발을 위해 현대의학이 의존하는 임상시험도 할 수 없게 된다. RCT 통제처치 집단 참가자는 연구설명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언제든 빠질 수 있다. 참여 자체를 막는 것은 독선이고 개인자유 침해다.
의료 RCT는 치료 가치가 심각하게 의심되는 때만 수행되는 데 비해 많은 개발 RCT는 확실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낳는 현금 지원 등의 효과를 알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경우 그냥 대책을 시행하면 되는 걸까. 이런 비판은 두 가지 문제를 무시한 것이다.
먼저, 겉으로 명백해 보여도 무엇이 더 나은지 항상 분명하지는 않다. RCT를 통해 반대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는 현금 지원이 갈등과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둘째, 많은 개발 상황에서는 자원 부족으로 자연 통제 집단이 만들어진다. 희소 자원의 경우 개입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기부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나은 정도와 비용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개발 RCT는 개입 효과의 규모와 비용을 포함한 불확실성 개념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 실행 가능한 대안보다 비용 효율이 훨씬 적은 조치를 택해 수혜자가 줄어드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RCT를 반대하는 세 번째 이유는 참가자가 그로 인해 실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현금 지원은 물가를 상승시키고 비수혜자에게 상대빈곤, 질투, 불행을 안길 수 있다.
극단적 비판이지만 여전히 RCT가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참가자가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는 일반적이다. 윤리위원회는 연구 위험과 잠재이익 사이 균형을 맞춘다. 의료 연구도 유사하다. 의사의 임상실습 원칙인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위험 최소화, 혜택 극대화’로 대체된다. 이를 주지시켜 연구 참가 여부를 정보에 근거해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은 일부 빈곤 퇴치 RCT가 시험의 일부라는 것을 모른 채 참여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윤리적 우려가 생길 문제다. 이런 RCT는 종종 정부, NGO, 기업에서 이미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시험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비수혜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친다면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런 개입이 비수혜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개입 확대를 막아 전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참가자에게 어느 정도 해를 끼치더라도 정책 실행을 염두에 둔 프로그램 시험이 아닌 RCT의 경우는 혜택이 비용보다 확실히 크다면 허용될 수 있다. 철학자 데릭 파르피트는 붕괴된 건물에 갇힌 사람이 아이 구조를 위해 의식이 없는 낯선 이의 발가락을 부러뜨릴 수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 이런 ‘이용’을 윤리적으로 허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RCT는 때로 다른 연구보다 수천 배 더 효과적인 개입의 방법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정책입안자들은 가장 효과적인 개입을 선택해 많은 생명을 구하거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개도국 RCT의 윤리 문제는 미묘하다. RCT가 이론적으론 윤리적일 수 있지만 실제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보통 잘사는 나라의 연구자들이 빈곤층 실험을 할 때는 권력과 특권에 상당한 비대칭이 작용한다. 연구자들은 보통 국내와 연구 지역에서 독립 윤리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외부 윤리 기준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보호 수단이다. 세계은행의 경제학자인 오예볼라 오쿠노그베는 그런 현지 감독이 안될 경우 연구자들이 윤리성을 점검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인도경영연구소의 안쿠르 사린은 윤리위가 그들의 결정을 공개 설명하도록 제안했다. 모두 좋은 제안이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은 차세대 개도국 연구원들에게 배울 기회를 제공하여 해결책 마련을 돕고 있다. 바네르지와 뒤플로의 후원으로 개설된 MIT의 새 과정에서는 고교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온라인 과정에서 잠재력을 보여준 개도국 시민들이 학비를 들이지 않고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아서 베이커 글로벌개발센터 연구원
요하네스 하우쇼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사회문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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