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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 직립보행의 시작은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입력
2019.11.16 13: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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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62만 년 전 이미 직립보행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유인원 ‘다누비우스 구겐모시’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일어선 모습을 그린 상상도. 네이처 제공
약 1,162만 년 전 이미 직립보행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유인원 ‘다누비우스 구겐모시’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일어선 모습을 그린 상상도. 네이처 제공

인류와 유인원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인 직립보행의 뿌리가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이 위대한 진화가 인류가 기원한 아프리카보다 유럽에서 먼저 이뤄졌으며, 직립보행 역시 땅 위가 아니라 나무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이 힘을 받으면서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직립보행의 진화 방식은 사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간 과학계에선 직립보행이 나무에서 먼저 이뤄졌다는 의견과 땅으로 내려온 뒤 서서히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 치열하게 맞섰다. 하지만 두 진영의 과학자들 모두 직립보행이 약 500만~700만 년 전에 이뤄졌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실제 최초의 인류 후보로 유력하게 꼽히는 ‘오로린 투게넨시스’는 약 600만~700만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굴된 이들의 대퇴골(넙다리뼈)에선 직립보행 흔적이 발견됐다.

하지만 지난 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결과는 기존 학설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독일 튀빙겐대와 불가리아 국립자연사박물관, 캐나다 토론토대 등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은 해당 논문을 통해 “약 1,162만년 전에 이미 직립보행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독일 바이에른주(州)에서 서쪽으로 약 70㎞ 떨어진 화석 매장지 ‘해머슈미데’에서 발굴한 1만5,000개 이상의 뼈 중에서 고대 유인원 화석 37점을 찾았다. 연구진은 이 고대 유인원에게 ‘다누비우스 구겐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누비우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강의 신이다. 구겐모시는 화석을 발굴한 장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시굴프 구겐모스를 기린 것이다.

연구진은 넓적다리(대퇴부), 정강이, 척추, 손, 발 등 37점의 화석이 한 마리의 수컷과 두 마리의 암컷, 새끼에서 나온 뼈라고 설명했다. 자 다란 수컷의 경우 키가 약 1m, 몸무게는 31㎏ 정도로 추산됐다. 보노보나 침팬지 수컷과 비슷한 크기다. 암컷의 몸무게는 20㎏으로 예측됐다.

특이한 건 이들 곳곳의 뼈가 직립보행에 적합한 형태라는 점이다. 우선 다누비우스 구겐모시는 서 있는 동안 몸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S자 모양의 척추를 갖고 있었다. 또한 이들의 다리는 직립보행 하는 인류처럼 하퇴부에 걸리는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길쭉한 팔은 현대의 유인원처럼 나무에 매달릴 수 있는 정도였다. 연구진은 “큰 발가락을 가진 덕분에 나무 위에서도 빠르고 안정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나무를 탈 수 있는 고양이과 포식자를 피하는데도 큰 발가락이 도움이 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게다가 다누비우스 구겐모시는 직립보행의 진화가 아프리카 밖에서 이뤄졌을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들 화석은 인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이미 유럽에서 직립보행이 시작됐다는 걸 가리키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직립보행이 인류와 유인원을 구분 짓는 큰 특징이지만 그 시작은 인류가 출현한 아프리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직립보행이 지상이 아닌, 나무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주장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9월에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미국 미주리대 연구진은 “약 1,000만 년 전 살았던 고대 유인원도 직립보행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제학술지 ‘인간진화저널’에 실린 이 연구결과는 헝가리 북부 광산촌 루더반야 인근에서 찾은 ‘루더피테쿠스’의 골반 화석을 대상으로 했다. 이 화석을 3차원(3D) 기술을 활용, 완벽하게 복원한 다음 현대 아프리카 원숭이와 비교해본 것이다. 루더피테쿠스는 다리, 이빨 화석 등을 통해 1,000만 년 전 살았던 게 확인됐으나 완벽한 형태의 뼈를 발굴하지 못해 어떤 자세로 이동했는지 알지 못했다.

분석 결과 루더피테쿠스의 골반과 허리는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아프리카 원숭이와 전혀 달랐다. 아프리카 원숭이는 골반이 길고 허리가 짧았지만 루더피테쿠스는 인류처럼 골반은 짧고 허리가 길었다. 주로 나무 생활을 했던 이들이 땅에 내려섰을 때 인간처럼 허리를 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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