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유일 생존자 인터뷰… “30년 끔찍, 이춘재 사과 받고파” 
 1991년 17세 박모양 사건 당일 납치됐다 탈출한 당시 32세 여성 
 “바지로 얼굴 가리고 스타킹 묶여… 하수구 안 끙끙대는 여자 목소리” 
지난 14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60)씨가 1991년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에게 당했을 뻔 했던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오지혜 기자

“이춘재에게 진심 어린 사과라도 받고 싶습니다. 이춘재 때문에 평생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는데…”

지난 14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60)씨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김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에게 1991년 살해당할 뻔 했던 인물이다. 이춘재의 범행 대상 가운데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범행 당시 이춘재가 자신을 잡아 채던 그 순간만큼은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1991년 1월26일 오후 9시쯤 충북 청주 가경동 택지개발 공사장 인근에서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듯 했던 한 남자가 갑자기 김씨 뒷덜미를 붙잡아 공사장 하수구 쪽으로 끌고 갔다.

김씨는 “상대 남자의 체구는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확 낚아채는 힘이 너무 강해서 순간 내 몸이 붕 떠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32살이었던 김씨에겐 5살, 10살 두 아이가 있었다. 손에 낀 금반지를 줄 테니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범인은 욕설을 퍼부으며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러곤 김씨 바지를 벗겨 얼굴에 씌우고 손목과 발목을 스타킹으로 묶은 뒤 하수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하수구 안에서 다른 인기척을 느꼈다. 김씨는 “끙끙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또 한 사람이 더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친 듯이 몸과 다리를 흔들어 머리에 씌워진 바지와 다리를 묶은 스타킹을 벗겨냈다. 컴컴한 하수구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곳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기어갔다. 손은 뒤로 묶이고 바지는 벗겨진 채 택시를 잡아타고 인근 파출소로 달려갔다. 경찰과 함께 다시 현장을 찾았지만 범인과 김씨 옆에 있던 여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여자는 다음날 새벽에 숨진 채 발견됐는데, 인근 공장에서 일하던 박모(당시 17세)양이었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14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60)씨가 시건 당시를 그림으로 그려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오지혜 기자

김씨는 가까스로 살아난 피해자였으나 보호받지 못했다. 그 날 이후 경찰은 수사를 이유로 김씨 집에 두 달 이상 살다시피 했다. 김씨는 “시부모님 모시고 살 때라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안 좋아져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도 엉망이었다. 함께 붙잡혔다 숨진 박양에 대해 김씨는 “나와 경찰이 되돌아갔을 때 형식적으로 플래시만 몇 번 비추고 말더라”며 “그 때 샅샅이 수색했다면 박양을 살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석 달간 수사 끝에 A(당시 19세)씨를 범인이라 붙잡았는데,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A씨 엄마와 잘 알던 사이였던 김씨는 “그 때도 A씨가 범인이 아니라고 내가 얘기했다”며 “A씨가 범인으로 몰렸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고 말했다.

범죄와 부실수사의 충격은 김씨를 불안에 떨게 했다. 최근 이춘재의 자백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김씨는 범인이 언제 다시 나타나 자신을 또 한번 덮칠 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범인 이춘재가 교도소에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요즘도 김씨는 “이춘재가 감옥에서 나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이춘재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 했다. 또 당시 수사 경찰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고 싶다고 했다. “평생 살해당할 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저는, 대체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합니까.” 김씨 어깨는 파르르 떨렸다.

청주=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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